16일 세종문화회관서 단독 콘서트 갖는 가수 남진
남진은 요즘 음악적으로 세대차이를 많이 느낀다고 했다. 20대인 기자에겐 이렇게 조언했다. “나이 먹으면 흘러간 추억의 노래가 좋아져. 어르신이 불러 왔던 가요에도 관심 가지면 살아가는 데 큰 벗이 될 거야.”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야∼ 옛날 생각나네. 스무 살인가. 여기 옛날 동아방송 건물을 돌면서 음악부장에게 레코드판 돌렸잖아. ‘신인가수 남진입니다’ 하고 인사 다녔거든.”
1964년 1집 ‘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해 1960, 70년대 ‘오빠 부대’를 거느리며 한국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남진. 그가 데뷔 49년을 맞아 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단독 콘서트 ‘내 노래의 이력서’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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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광화문에 얽힌 추억이 많다. 1965년 동아방송 라디오 공개방송에 신인가수로 소개될 때도 광화문이었고, 1971년 첫 단독 콘서트도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서울시민회관에서 열었다.
“매일 여기서 레코드판 돌리니까 라디오 공개방송에 날 출연시켜 준거야. 내가 얼마나 떨었던지 공개방송에 찾아온 누나가 무대로 나오는 날 보고 ‘홍시감이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러더라고. 항시 여기 지나 댕기면 그때 그 짜릿함이 생각나지.”
‘님과 함께’ ‘마음이 고와야지’ 같은 히트곡들은 요즘도 아이돌 가수들이 인기 TV 프로그램에서 즐겨 부른다. “일곱 살 꼬마가 ‘님과 함께’를 부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랐지. 그게 40년 된 노랜데. 평가는 역사가 한다고 하잖아. 노래도 그런 거 같아. 재주 좋은 후배들이 내 노래를 멋지게 불러주니 고맙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1970년대엔 가수 나훈아(66)와 한국 가요계에서 쌍벽을 이뤘다. “시대가 만들어준 라이벌이야. 그때 제일 인기 많았던 것도 경쟁자가 있어서야. 둘이 한번 같이 무대에 서서 팬들에게 공연도 보여주고 싶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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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얼굴에 주삿바늘 하나 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진짜요?”라고 물었더니 얼굴을 내밀었다. “만져봐.” 사실 확인을 위해 한쪽 볼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봤다. 잔주름은 있어도 탄력이 느껴졌다. 검은 머리털도 꽤 두껍다. 그는 손바닥으로 눈썹부터 이마 위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관록 있어 보이는 게 좋지. 뿌리를 봐, 염색한 머리가 아니야. 흰머리가 안 난다니깐.”
인터뷰 내내 편한 자세로 호탕하게 웃는 모습에 애주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좋아하면 끝을 보는 스타일인데 술은 안 좋아해서 다행이지. 맥주 한 잔 마시면 최고로 기분 좋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피운 담배도 끊은 지 20년 됐어. 고향 목포에서 알아주는 불량학생이었는데 말이지.”
노래를 한 지도 50년이 다 돼가고 전성기도 누려 봤다. 더 남은 게 있을까.
“옛날에는 최고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어디가 끝인가 알려줘 봐. 노래는 살아 있는 한 끝없는 길이야. 이젠 내 삶이 곧 노래지. 노래의 진정성을 찾아서 마음에 담고 부르는 거야. 묵은지의 깊은 맛 있잖아. 입에 착 씹히는 맛, 군내 나는 맛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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