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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상복의 남자이야기]따돌림당하는 딸에게 아빠가

입력 | 2013-02-16 03:00:00


아내는 딸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남자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작년 내내 딸을 괴롭혔던 아이가 학원에까지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며칠 만에 딸을 외톨이에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워낙에 약아빠진 아이라고 했다. 물론 그 아이도 마음에 쌓인 게 많으니 분풀이를 하려고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 못살게 구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남자는 아내와 마주 앉아 한숨을 지었다. 섣부르게 학원에 문제 제기를 할 수도 없었다. 요즘 아이들의 왕따는 고도로 지능화되어 어른들이 개입해도 손쓸 방법이 없을 때가 많다. 증거도 없을뿐더러 ‘그냥 장난’이라고 우기면 그만이다. 당하는 녀석만 바보가 되기 일쑤다.

남자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아내와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학원을 바꿔야 할지, 옮긴다면 언제까지 피해 다닐 수 있을지. 그러다가 대화가 언제나처럼 원점으로 돌아갔다. 딸이 착한 것까지는 좋았다. 너무 순둥이여서 문제였다. 애기 때부터 사촌동생들한테 장난감을 빼앗기고 당하기만 하더니.

남자는 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바보를 왜 낳아서 이 고생을 하는 것인지. 저런 성격으로 이 험한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밤새 뒤척이다가 주말 아침이 희붐하게 밝아올 무렵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 또한 어린 시절에 행복하지 못했다는 기억.

어떻게 한동안 잊고 살았을까. 친구 집에 놀러 갔더니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친구의 생일. 혼자만 초대를 받지 못한 것이었다. 가난하고 지저분하다고.

눈물이 찔끔 났다. 옛 기억이 생각의 각도를 갑자기 바꿔 놓았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아빠에 이어 딸까지 이런 아픔을 당해야만 하는 것인지. 딸이 불쌍했고 미안했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 시절, 앞장서서 괴롭히던 녀석들의 후일담을 들은 적이 있다. 학교가 자기 영역인 것처럼 목에 힘을 주고 다녔지만 점점 변변치 않은 신세로 전락했다는 소식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그때가 녀석들의 전성기였다. 그 어린 나이에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면, 그것은 크나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이후로 기나긴 내리막을 타야만 한다면.

남자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확실히 세상은 돌고 도는 곳이다. 누구에게나 ‘좋을 때’가 따로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게 언제인가의 차이가 있을 뿐. 그러니까 지금 외롭고 괴롭다고 해서 좌절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남자는 딸에게 이렇게 말해주기로 했다.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라고. 네 앞에는 쇠털같이 많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상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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