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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세계 일류] 투명 LCD 디지털 광고판 제작 ‘바이널’

입력 | 2013-02-13 03:00:00

투명한 유리 위에 동영상… 럭셔리 업체도 한눈에 반했다




만지고 돌리고… 신개념 터치 광고판 투명한 유리 위에 동영상이 흐른다. 쇼윈도 앞에 선 소비자가 터치스크린을 조작해 제품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확인할 수도 있다. 사진은 환상적인 광고판 트랜스룩을 만든 바이널의 조홍래 사장.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겨울의 컴컴한 지하실. 조홍래 바이널 사장이 스위치를 올리자 벽에 맞붙은 시커먼 기계에서 눈부신 빛이 쏟아져 나왔다. 기계는 쇼윈도였다. 그 속에 든 고급스러운 하얀색 악어가죽 핸드백이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조 사장이 다가가 유리창에 손을 댔다. 투명한 유리창 위로 그림과 글씨가 떠올랐다. 마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는 것 같았다. 그는 벌집 모양의 메뉴가 떠오르자 ‘캠페인’ 버튼을 선택했다. 그러자 투명 유리창 위로 수많은 무늬가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뒤에 놓인 흰색 백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겉은 흔히 보는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와 다름없었지만 뒷면으로 실제 제품이 그대로 보인다는 게 차이였다. 조 사장의 바이널은 지난해부터 이렇게 투명한 LCD를 사용한 ‘트랜스룩’이라는 디지털 광고판을 만들기 시작했다. 바이널이 지난해 이 제품으로 올린 매출액은 약 10억 원. 회사 전체 매출의 5%에 불과했지만 단 6개월 만에 이룬 성과였다. 올해는 관련 매출이 40억 원이 넘을 것으로 회사 측은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지식경제부는 트랜스룩을 세계 일류 상품으로 선정했다.

바이널을 창업한 것은 2000년, 조 사장이 28세가 되던 해였다. 이른바 ‘닷컴 버블’이 한창이던 때라 세상은 인터넷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고, 너도나도 인터넷 관련 창업에 나서던 시기였다. 그때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입니다’ 등의 광고 카피로 유명한 조동원 당시 화이트커뮤니케이션 대표가 조 사장에게 창업을 제안했다. 웹페이지의 사용자경험(UI)을 디자인하는 전문 디자인회사를 만들면 투자하겠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웹에이전시(웹페이지 제작 대행회사)가 하나 생겨났다. 물론 그때도 웹에이전시는 흔했다. 하지만 바이널은 달랐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디자이너를 채용해 창업하는 일반적인 웹에이전시와 달리 삼성디자인멤버십 출신인 조 사장이 동료 디자이너들과 함께 창업한 회사였기 때문이다.

삼성디자인멤버십에서는 세계적인 음향기기 제조사 뱅앤올룹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나 소니의 수석디자이너가 강사로 나와 학생들과 토론했다. 학생들은 명문대, 비(非)명문대를 따지지 않고 디자인 실력만으로 서로 겨루고 어울리며 성장했다.

그렇게 창업 2년이 지나자 조 사장은 회사의 성격을 바꿨다. 기획자와 프로듀서를 채용했고, 조직관리를 위한 관리직 직원도 늘렸다. 그는 “디자인회사가 아무리 좋은 디자인을 해도 디자인이 제품에 끝까지 반영되도록 하는 기획과 제조, 판매까지의 과정을 소홀히 하면 최종 제품은 엉망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바이널은 ‘디자인 외주업체’가 아닌 ‘과정을 디자인하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조 사장은 “5억 원짜리 디자인 의뢰는 포기하고 10억 원짜리 마케팅 컨설팅 용역에만 도전했다”고 설명했다. 잔금을 제때 못 받아 집을 담보로 직원들 월급을 주다 파산 직전까지 가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꿋꿋하게 버텼다. 그는 “하도 위기가 많다 보니 나중엔 위기가 일상처럼 느껴지더라”고 말했다.

트랜스룩은 이런 ‘과정을 디자인하는 제품’의 대표작이었다. 이미 투명 LCD를 이용한 유사 제품은 시장에 몇 종류가 있었다. 하지만 트랜스룩은 쇼윈도 앞의 사용자가 직접 제품을 회전시키거나 배경 화면도 바꿔볼 수 있게 했다.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이모저모 뜯어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제품 판매 루트도 다양화했다. 바이널은 럭셔리 패션브랜드 콜롬보를 고객으로 삼으면서 이 회사의 서울 청담동 매장과 이탈리아 밀라노 매장에 제품을 설치했다. 진열대를 완제품으로 파는 대신 매장 인테리어 설계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제품 가격도 낮췄다. 주문을 받아 소량 생산하는 제품이지만 최소 생산물량을 정해 구매부터 생산까지의 모든 과정을 대량생산 제품에 최대한 가깝게 만든 것이다. 일종의 도박이었다. 조 사장은 “해외 전시회 출품을 통해 시장 반응을 미리 살핀 덕에 수요를 예측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디자인은 창의적으로 제품 생산 과정을 다시 정의하는 것”이라며 “아시아 최고의 디자인회사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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