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김용준 총리후보 전격 사퇴]朴당선인 ‘나홀로 밀봉인사’가 비극 불렀다

입력 | 2013-01-30 03:00:00

■ 부실검증 ‘박근혜 인사스타일’ 상처




씁쓸한 퇴장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던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29일 후보직을 전격 사퇴했다. 사진은 김 위원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경제1분과 업무보고에 참석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마중 나와 있는 모습. 인수위사진기자단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는 29일 자신이 모르는 재산 문제가 언론을 통해 제기되자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측 관계자는 “김 후보자가 본인도 모르는 재산이 발견되자 당황한 것 같다”며 “김 후보자도 알지 못하는 재산 형성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신의 재산을 확인하지 못한 김 후보자도 불찰이지만 임명된 후보자의 재산 형성과정은 첫 번째 확인해야 할 검증 사안이라는 점에서 당선인의 부실한 검증이 화를 불렀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 본말이 전도된 ‘보안’ 인선

박 당선인은 대통령 당선 이후 인사를 할 때마다 잡음이 나오고 있다. 청년특위 위원의 도덕성 논란에 이어 윤창중 대변인에 대한 이념 편향 논란이 제기됐다. 당선인이 직접 한 인선은 아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협의를 거쳐 임명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특수업무경비 횡령 의혹 등 갖가지 도덕성 논란을 겪다 아직 국회 인준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사상 초유의 청문회 전 총리 후보자 낙마라는 참사까지 일어난 것이다.

‘보안’을 강조하느라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본말이 전도된 인사시스템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는 게 정치권을 비롯해 당선인 주변에서까지 제기되는 한결같은 지적이다.

일단 누가 인선 작업을 하는지 정확히 아는 인사가 없다. 당선인 측은 “후보를 검증하는 별도의 팀이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고 전한다. 그러나 당선인 비서실장, 대변인, 정무팀장 등 핵심관계자들도 한결같이 “누가 하는지 모른다”고들 말한다.

지금 인선 담당자로 언론에 드러난 사람은 이재만 전 후보 보좌관뿐이다. 이 전 보좌관은 매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당선인 비서실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전과 밤에는 어디에 있는지 비서실 구성원들도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인선작업설, 당선인 사적 비선라인 가동설 등 갖가지 소문만 풍성하다.

어떤 과정을 거쳐 검증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베일에 싸여 있다.

박 당선인의 김 후보자 임명 발표 다음 날인 25일부터 두 아들의 병역 면제와 재산형성과정에 대한 언론의 검증 작업이 시작됐다. 26일자 동아일보와 채널A를 통해 서울 서초동 땅에 대한 증여세 탈루 의혹이 제기되면서부터 후보자 측은 곧바로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언론에 공개된 자료로 하루 만에 검증할 수 있는 갖가지 의혹조차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이후 김 후보자는 갖가지 부동산 매매 과정에 대해 시원한 답변을 제대로 내놓은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당선인 주변에서조차 “당선인이 김 후보자가 헌재소장과 대법관을 지낸 경력 때문에 당시 인사청문회를 통해 제대로 검증을 거쳤다고 착각한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나올 정도였다. 김 후보자는 1994년 헌재소장 임명 당시 재산은 공개했으나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전이라 공식 검증은 거치지 않았다.

박 당선인은 김 후보자를 임명하기 전 여러 가지 의혹이 될 만한 것이 있는지 직접 물어봤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김 후보자는 아들의 병역 문제를 비롯해 문제될 만한 부분을 스스로 밝히며 직접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이 당선인이 자체 검증을 거친 뒤 최종 확인하는 차원이었는지, 아니면 당선인이 이 과정 자체를 검증과정으로 여겼는지는 불분명하다. 후자라면 소홀한 검증이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현 정부의 인사 파일을 박 당선인에게 모두 넘겨준 것으로 전해졌다. 현 정부의 인사풀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인사를 발탁할 경우에 문제가 발생한다. 당선인 측 관계자는 “인사검증팀이 새로운 발탁 인사를 검증할 때 청와대나 정부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검증을 진행한 같다”며 “보안이 그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 상처 입은 박근혜 리더십

첫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는 박 당선인의 리더십에 큰 상처를 냈다.

29일 특별사면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던 당선인으로서는 더이상 각을 세우기가 여의치 않아졌다. 이명박 정부의 인사에 대해 문제의식을 드러냈던 박 당선인 스스로가 인사 때문에 발목이 잡힌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은 지난해 8월 새누리당 대선후보 초청 토론에 출연해 “현 정부의 최대 실책은 인사문제”라며 “현 정부에 대한 불신도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회전문 인사 등 인사문제에서 시작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인수위에서 분과별로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유례없이 정책 현안에 대한 의견을 쏟아내는 등 각종 작업에 속도를 내려는 찰나 급제동이 걸린 것도 당선인에게는 타격이다.

당선인의 한 측근은 “선거 때 언론의 검증 칼날이 상대적으로 약하던 시기에 진행했던 보안 위주의 인사시스템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나라 공직자의 검증은 자질보다 도덕성에 우선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에 맞춰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