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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코리아/유디트 크빈테른]다문화 없는 한국의 다문화 방송

입력 | 2013-01-24 03:00:00


유디트 크빈테른 강릉원주대 강릉캠퍼스 독어독문학과 초빙교수

요즘 TV를 자주 본다. 한국에 온 처음에는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TV 시청을 했지만 이제는 그 자체를 즐긴다. 그런데 채널을 돌리다가 다문화 방송 프로그램을 마주치게 되면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나는 이런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 왜 그럴까.

내겐 베트남에서 온 친구가 있다. 몇 해 전 그 친구가 아이를 낳았을 때, 친구 집에 갔다가 그가 아이에게 베트남어가 아닌 한국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많이 놀랐다. 내게 아이가 있다면 남편은 아이에게 한국어로, 나는 독일어로 말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개 언어를 할 수 있는 것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지닐 수 있는 장점 아닌가.

그래서 친구에게 “아이가 두 가지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베트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좋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러나 친구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베트남어보다 한국말을 배워야죠”라고. 나는 한 번 더 설득했다. “옛날에 미국인과 결혼해서 이민 간 많은 한국 여자들도 영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안 가르쳤지요. 그러나 그 아이들이 나중에 한국말을 배우려면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러나 친구는 계속 “아이가 베트남어를 할 줄 아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며칠 전 나는 우연히 TV에서 한 다문화 프로그램을 봤다. 처음 본 프로그램이었지만 익숙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이미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프로그램은 동남아시아에서 온 어느 젊은 여자가 한국 남자와 결혼해 열심히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녀는 한국말을 빨리 배웠고 신랑 가족을 위해 한국 음식을 만드는 방법도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제작진은 그녀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심지어 김장 김치도 담글 수 있다는 것까지 보여주려고 애썼다. 명절에는 한국 며느리들처럼 열심히 제사를 준비하는 모습도 나왔다. 이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와, 벌써 한국 사람이 다 됐네”라고 말할 것 같았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왜 내 친구가 아이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치지 않으려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친구는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나보다 더 예민한 사람이었기에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빨리 포착한 것이다.

나는 다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비로소 한국 사회가 외국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바를 확실히 감지할 수 있게 됐다. 그 프로그램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여자들은 모든 면에서 한국 생활에 빨리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리하여 훗날 다문화 사회에서 살게 될 아이들도 ‘완벽한 한국 아이’로 자랄 수 있게 된다.

불행히도 내겐 이런 메시지가 프로파간다처럼 보인다. 내가 다문화 프로그램을 통해서 확인한 것은 한국 사회가 ‘한국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고 있는’ 다문화가족만 받아들이려 한다는 것뿐이었다.

만약 내 친구가 베트남이 아니라 영국이나 미국에서 왔더라면 어땠을까. 많은 이들이 아이에게 영어를 사용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을 거다. 독일인인 내가 아이를 낳았더라도 내가 아이에게 독일어로 말하는 것이 더 좋다고 조언했을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다문화가정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은 보통의 한국 가정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과 다르다.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그 차이점을 장점으로 만드는 것이다. 차이점이 장점이 되려면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엄마의 고향 문화와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먼저 제공되어야 한다.

다문화 프로그램의 제작 의도처럼 보통 한국 사람들도 다문화에 대한 ‘옹졸한 생각’에 갇혀 있을까. 나는 많은 한국인들의 마음이 그렇게 좁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다문화 프로그램 제작진의 시야만 조금 더 넓어지면 될 것 같다.

유디트 크빈테른 강릉원주대 강릉캠퍼스 독어독문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