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 인고의 시간서 부활
DBR 그래픽
‘한국 벤처기업의 신화’로 불리던 팬택의 승승장구에 제동이 걸린 것은 2006년이다. 모토로라에서 선보인 레이저폰이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휩쓸면서 해외 매출 비중이 높던 팬택에 큰 타격을 줬다. 설상가상으로 휴대전화 시장을 어둡게 내다본 은행들이 자금을 회수하면서 국내 자금줄이 끊겼다. 연 매출만 2조 원에 이르던 팬택은 결국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하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팬택은 시장의 변화를 정확히 읽고 발 빠르게 대응해 국내외 시장점유율 및 소비자 신뢰를 회복했다. 워크아웃 중에도 기술개발 투자를 아끼지 않아 앞서가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도 확보했다. 솔선수범하는 리더십과 전 직원의 단합으로 워크아웃 기간 내내 흑자 유지라는 기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2011년 12월 31일, 5년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하는 데 성공했다. 기사회생의 성공 요인은 다음과 같다.
○ 철저한 원인 분석
워크아웃 개시가 결정된 후 팬택은 위기에 빠진 원인부터 분석했다. 무엇보다 비대한 마케팅 비용이 눈에 들어왔다. 팬택은 1997년 휴대전화 사업을 시작한 후 모토로라, 노키아 등 글로벌 업체의 물량을 수주, 생산하며 규모를 키웠다. 자가 브랜드 사업에 나선 것은 2004년부터다. 이후 모토로라, 노키아 외에 삼성전자, 소니에릭손, LG전자 등 굵직한 업체들과 전면전을 벌이면서 해마다 1000억 원이 넘는 돈을 마케팅에 쏟아 부었다.
○ 선택과 집중 그리고 차별화
팬택은 우선 목표 시장을 새롭게 규정했다. 휴대전화 시장은 크게 오픈마켓과 사업자마켓으로 구분된다. 오픈마켓은 통신사와 무관하게 제조업체들이 각자 기기를 들고 들어가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이다. 이 시장에서는 기업 브랜드 파워와 디자인, 기술력 등이 중요하다. 사업자마켓은 통신사를 매개로 휴대전화를 판매하는 시장이다. 통신사와의 제휴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어떤 통신사와 얼마나 효율적으로 손을 잡느냐가 마케팅의 핵심이다. 팬택은 동원할 수 있는 자금 규모에 한계가 있고 삼성이나 노키아 등 거대 기업에 비해 브랜드 파워가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오픈마켓을 줄이고 사업자마켓에 집중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50여 개국에 이르던 진출 국가 수도 절반으로 줄였고 수출 모델 수는 30여 개에서 15개 정도로 손질했다. 전 세계 사업자마켓도 국내와 미국, 일본, 중남미로 단순화했다.
국가별 전략도 새로 짰다. 국내에서는 스카이(SKY)를 핵심 브랜드로 삼았다. 일부 마니아층만 사용한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돌핀폰과 레인폰 등 대중성 높은 모델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북미와 일본에서는 해외사업자와의 전략적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북미에서는 AT&T, 버라이존과 협력을 강화해 제품 출시 전부터 포트폴리오를 함께 만들었다. 일본 시장에서는 까다로운 일본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충족하는 일에 신경을 썼다. 품질관리 사항을 대폭 늘려 출시 전 20만 건 이상의 검사를 시행했다. 복잡함을 싫어하고 단순한 스타일과 기능을 선호하는 일본인의 성향을 반영해 간단 모드를 채택한 제품을 개발했다.
○ 신속한 의사결정과 꾸준한 기술개발
또 팬택은 경쟁사보다 빠르게 신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워크아웃 기간에도 매출의 10%를 기술개발에 투자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워크아웃 기간 5년 동안 기술개발에 투자한 금액만 1조 원이 넘는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2010년 4월, 팬택은 국내 최초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리우스’를 출시했다. 같은 해 7월에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가운데 가장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스마트폰 ‘베가’를 선보였다. 스마트폰으로의 전략적 집중이 빠른 결실로 이어진 것이다.
○ 강력한 리더십
조직원 및 협력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중요한 순간마다 과감하게 전략적 판단을 내린 박병엽 부회장의 리더십을 빼놓을 수 없다. 팬택의 창업주이자 워크아웃을 진두지휘한 박 부회장은 밤낮과 주말을 반납하며 회사를 살리기 위해 솔선수범했다. 그는 팬택의 실질적 최고경영자이면서도 회사를 워크아웃에 빠지게 했다는 미안함과 조기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회장’이 아닌 ‘부회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워크아웃 성사 요건인 채권단 100% 동의를 받기 위해 3개월간 전국을 돌아다닌 점이나 스마트폰으로의 전환 등 소신 있게 전략적 판단을 내린 점, 직원과 협력사에 경영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목표의식을 공유할 수 있게 한 점 등이 그의 리더십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는 직원들의 단합과 추진력을 이끌어냈고 회생을 위해 힘을 모으는 원동력이 됐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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