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장년의 한국 남자들은 울 줄도 모른다. 펑! 펑! 눈물을 쏟으면 큰일 나는 줄 안다. 돌부처가 따로 없다. 20대 아들의 이번 ‘대선(大選) 눈총’에도 묵묵부답 말이 없다. 뚱하고 무뚝뚝하다. 그런데도 왜 곧잘 꽁할까. 툭하면 삐친다. 아마도 답답하다는 신호일 것이다. 그나마 마음속엔 조갯살처럼 여린 부분이 남아있음이 분명하다.
눈물도 배워야 나오는가. 누가 가르쳐줘야 울 수 있는 것인가. 가슴이 꽉 막힐 땐 엉엉 우는 게 최고다.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모두 내지르며, 한바탕 대성통곡을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 비온 뒤 말간 하늘처럼 가슴속이 개운해진다. 온갖 울혈과 앙금이 씻은 듯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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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아이들은 이마에 실핏줄이 퍼렇게 돋을 때까지 울어댄다. 하지만 눈물이 없다. 몸짓과 소리로만 운다. 그것은 울음이 아니다. 저절로 터지는 ‘생명의 소리’일 뿐이다. 짐승들은 아예 태어날 때 울지조차 않는다.
대한민국 수컷 꼰대들의 눈물은 고단한 ‘인생의 사리’이다. 수십 년 곰삭아 나오는 진액이다. 피와 땀이 버무려진 ‘저릿하고 먹먹한 삶의 지문’이다. 굳이 감출 게 뭔가. ‘남몰래 흘리는 남자의 눈물은 보석’이라고? 푸하하! 젠장 찌개! 눈물은 피와 농도가 같다. 그래서 눈물은 짜다.
조선 선비 연암 박지원(1737∼1805)은 늘 울고 싶었다. 하지만 간장 종지만 한 조선 땅 어디에도 울 만한 곳은 없었다. 그러다가 1780년 광활한 중국 요동 벌판에 들어서면서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아, 천하의 훌륭한 울음터로다! 사나이가 한번 크게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 연암은 그곳에서 한순간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이 뻥 뚫려버렸다.
강호에 절망과 분노가 가득하다. 핏발 선 눈빛들이 서늘하다. 밥벌이가 이렇게 힘든 적은 일찍이 없었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뭔가를 해야 한다. 몸의 에너지는 바닥나 ‘번 아웃(Burn Out)’된 지 오래. 대한민국 ‘5학년 남자’들은 어디 가서 실컷 울고 싶다. 하지만 그럴 만한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적막강산. 술만 퍼마신다. 술이 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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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실컷 울어라! 밤새도록 울어라! 땅을 치며, 발을 구르며, 울고 또 울어라! 늑대처럼 울부짖어라. 놀 줄 모르면 어떤가. 눈물은 힘이 세다.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이대흠). 창자가 쏟아질 때까지 울고 또 울어라! 대한민국 수컷 꼰대들아! 울어야 산다.
‘눈물 속으로 들어가 봐/거기 방이 있어//작고 작은 방//그 방에서 사는 일은/조금 춥고/조금 쓸쓸하고/그리고 많이 아파//하지만 그곳에서/오래 살다보면/방바닥에/벽에/천장에/숨겨져 있는/나지막한 속삭임 소리가 들려//아프니? 많이 아프니?/나도 아파 하지만…’(김정란 ‘눈물의 방’에서)
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