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의 리더십
투표 마치고 악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2동 제3투표소가 마련된 언주중에서 투표를 마친 뒤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이날 박 당선인은 예상과 달리 회견 시간 대부분을 정수장학회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데 할애하며 정면 돌파에 나섰다. 하지만 정수장학회와 관련한 판결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오히려 야당에 공격의 빌미를 줬다.
이 장면은 박 당선인의 리더십 스타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박 당선인은 참모들을 모아놓고 집단 토론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전략’이라는 말도 싫어한다. 캠프 조직 중 ‘전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구가 한 곳도 없었을 정도다.
○ 카리스마 vs 독단
2010년 6월 29일 박 당선인은 국회 본회의 발언대에 섰다. 2005년 4월 당 대표 자격으로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한 이후 5년 2개월 만이었다. 이날 연설은 특별했다. 세종시 수정법안에 대한 국회 본회의 찬반 표결을 앞두고 반대 토론자로 나선 것이었다. 박 당선인이 1998년 의정생활을 시작한 이후 본회의 안건 찬반토론을 한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시 친이(친이명박)계 의원들은 “어차피 세종시 수정법안이 부결될 게 뻔한데 굳이 반대토론까지 나설 필요가 있느냐”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박 당선인은 직접 반대 토론에 나섰다. 확신이 서면 양보나 타협은 없었다. 박 당선인은 이날 ‘신뢰와 원칙’이란 자신의 최대 정치적 자산을 얻었다.
하지만 그의 신념은 때론 독단으로 비치기도 했다. 올해 6월 당내 대선후보 경선 룰을 둘러싸고 비박(비박근혜)계 후보들이 일제히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요구했으나 박 당선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박정희 vs 육영수
박 당선인의 첫 번째 슬로건은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었다. 10월 말 지지율 정체 현상 속에서 여성 대통령론은 하나의 돌파구였다. 민주통합당은 박 당선인의 ‘여성성’을 문제 삼았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박 당선인이 여성 대통령론을 들고 나온 것은 남성 중심의 정치문화에 대해 국민의 혐오감이 크다는 점도 고려됐지만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달리 어머니 육영수 여사는 국민적 거부감이 거의 없다는 점도 작용했다. 그는 유세 때마다 “지금은 어머니 리더십이 필요한 때”라며 “어머니는 자식이 열이라도 굶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자신의 롤 모델로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을 꼽아왔다.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해 “영국을 파산 직전에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으며 불행을 겪어 봤기 때문에 남을 배려할 줄 알았고 늘 관용의 정신을 갖고 합리적 방법으로 국정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 위기 극복 vs 위기 자초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라고 한다. 박 당선인은 자신만의 정치 스케줄이 있다. 7월 대선 출마 선언 이후 박 당선인은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해 당내에서조차 비판을 받았다. 측근들은 ‘하루빨리 과거사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박 당선인은 그때마다 “생각하는 게 있다. 그건 내게 맡겨 달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다 두 달여 만인 9월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박 전 대통령 시절 과거사 문제를 종합적으로 사과했다.
보기에 따라 실기(失期)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문제가 충분히 공론화된 뒤 한꺼번에 털고 감으로써 여러 차례 사과하는 정치적 리스크를 줄였다고 볼 수도 있다. 여론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은 박 당선인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문제는 당 대표나 대선후보와 달리 대통령은 매일 쏟아지는 국정 현안에 대해 그때그때 분명한 지침을 줘야 한다는 데 있다. 박 당선인이 이제 국정 책임자로서 권한 이양과 빠른 결단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 당선인은 ‘수첩공주’라는 별명처럼 한번 적어놓은 것은 끝까지 챙기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꼼꼼하고 세심하다. 그의 이런 면모가 공직사회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