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1798년 황해도 서흥(瑞興)으로 부임하는 사또를 보내면서 시를 지어 냉면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을 부러워하였습니다. 눈 덮인 겨울 따뜻한 실내에서 솥뚜껑에 노루고기를 구워 먹습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보면 숯불을 화로에 피워 놓고 삿갓 모양의 솥뚜껑을 올린 다음 쇠고기에 갖은 양념을 하여 둘러앉아 구워 먹는 것을 난로회(煖爐會) 혹은 철립위(鐵笠圍)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입가심으로 배추절임 곁들인 냉면 한 사발을 먹습니다. 정약용의 후학 조두순(趙斗淳)이 마포에서 지은 시 ‘풍악소리 서쪽 누각에 요란하게 울리는데, 소나기에 저녁바람 불자 가을처럼 시원하네. 옆집 고운 여인이 새로 배운 솜씨를 발휘하였기에, 평양냉면이 사람의 목구멍을 시원하게 하네(笙簫迭發鬧西樓 驟雨斜風颯似秋 賴有芳隣新手法 箕城冷麵沃人喉)’라 한 것을 보면 19세기 무렵에는 서도의 냉면이 한양에까지 들어온 모양입니다.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