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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다문화 극단 ‘가람’ 8일 설레는 첫 무대

입력 | 2012-12-07 03:00:00

필리핀 동화 각색한 작품… 자녀 10명 ‘숲속 요정’ 출연




“아버지! 소녀가 보기에도 수상한 점이 너무 많은 사람 같습니다. 더구나 못생겼잖아요.”

“네 아빠 얼굴을 보거라. 누가 저 얼굴 보고 시집가겠냐? 그나마 왕이니까 이 엄마가 시집간 거지.”

6일 오전 전남 해남군 해남읍교회.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인 김수아 씨(40)와 로나 티폴타도 씨(40)가 연극 공연 준비에 한창이다. 두 사람은 극단 ‘가람’의 단원들이다. 가람은 한국연극협회 해남지부가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2012년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 다리’ 공모사업에 선정돼 8월 창단했다. 단원은 8명으로 모두 필리핀에서 시집온 여성들이다. 극단 이름은 작은 물방울이 모여 강을 이루듯 다양한 나라의 사람이 연극으로 화합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강의 우리말인 ‘가람’으로 지었다.

극단 가람은 8일 오후 4시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연극 ‘바하이 쿠보’를 선보인다. 창단 후 첫 공연이라 단원들의 마음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바하이 쿠보’는 필리핀의 전래 동화를 각색한 작품이다. 가난한 나무꾼이 금화를 가져오면 공주와 결혼을 시켜 주겠다는 왕의 말에 열심히 금화를 바쳤는데 왕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얼굴을 바꿔 왕궁 요리사로 들어가 왕을 혼내준다는 내용이다. 이 연극에는 단원들의 초등학생 자녀 10여 명이 ‘숲 속의 요정’으로 출연한다.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까지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단원 대부분이 한글을 몰라 대사를 외우기가 쉽지 않았다. 광고기획사를 운영하는 차재웅 감독(43)과 부인 고유경 씨(38·한국연극협회 해남지부장)는 일단 배역을 정한 뒤 1시간짜리 공연의 대사를 모두 녹음했다. 차 감독은 단원들에게 시간이 날 때마다 대사를 들으며 외우게 했다. 어느 정도 대본을 익힌 단원들에게는 낱말의 의미를 설명해주며 표정 연기를 가르쳤다. 연극을 처음 해본 탓에 몸짓이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연기가 많이 좋아졌다. 지금은 긴 대사를 실수 없이 한 번에 해내는 등 아마추어 연극인 치고는 수준이 꽤 올라왔다는 게 차 감독의 설명이다.

왕비 역을 맡은 로나 씨는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며 “대사가 어렵고 외워지지 않아 무척 힘들었지만 열심히 한 덕에 지금은 한국어 실력이 꽤 늘었다”고 말했다. 차 감독은 “단원들은 이번 연극을 시작으로 전남연극제에도 참가해 실력을 평가받고 싶다는 소망도 갖고 있다”며 “내년에는 베트남, 중국, 캄보디아 출신 이주여성 8명이 극단에 합류하기로 해 진정한 다문화 극단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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