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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고기정]무엇이 티베트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가

입력 | 2012-12-03 03:00:00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중국 칭하이(靑海) 성 황난(黃南) 티베트족 자치주 퉁런(同仁) 현에서는 지난달에만 티베트인 10명이 분신했다. 열네 살 소년부터 두 아이를 둔 엄마까지 몸에 불을 질렀다. 티베트인들은 예부터 ‘말을 하느니 노래를 하고, 걷느니 춤을 춘다’고 했다. 무엇이 그런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을까. 지난주 이곳을 찾은 건 이러한 의문에 조금이라도 실마리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중국 당국의 통제 속에 어렵게 찾아간 퉁런에서 만난 많은 현지인은 ‘불평등’이 한 이유라고 말했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된 지 오래라지만 티베트엔 변변한 공장도 없어 티베트 청년들은 학교를 졸업해도 번듯한 일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승려 외에 젊은이들이 분신이나 집단시위 가담자가 늘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불평등이 심화되고 먹고살기 팍팍해졌다고 애 엄마가 활활 타오르는 불에 몸을 던질까. 중국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나타난 불공평 문제가 티베트족만의 문제도 아니고 티베트족이 특히 심하다는 근거도 없는 것 같다.

결국 그들만의 종교와 관련이 깊었다. 티베트인들은 약 500년 전 태어나 제1대 달라이 라마가 된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계속 환생한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정신적 지도자’인 현 달라이 라마 14세는 1959년 중국의 박해를 피해 피신한 뒤 해외를 떠돌고 있다. 티베트인들이 분신하면서 달라이 라마의 귀환을 외치는 것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오늘날 티베트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와 신앙의 문제 이 둘을 양 축으로 다양한 요소가 결합되어 있는 듯하다.

현지 취재 과정에서 티베트인들이 근본적으로 중국과 공존하기 어려운 또 다른 요소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은 멀리 베이징(北京)에서 들려오는 지도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1951년 처음 강제 병합됐을 때의 마오쩌둥(毛澤東) 연설부터 지난달 15일 총서기가 된 시진핑(習近平)의 푸퉁화(普通話·표준 중국어)가 모두 그들에게는 외국어일 뿐이다.

더욱이 군사력 때문에 병합된 티베트로서는 중국을 여전히 점령국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퉁런 현 소재지에서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는 무장경찰을 일부 주민들이 피해 다니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수 민족인 한족의 마음속에도 소수 티베트인에 대한 이질감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퉁런에서 만난 한 한족 택시 운전사는 분신하는 티베트인에 대해 “술 먹고 취해서”라고 비꼬았다. 같은 고장 사람으로서의 연민은 추호도 없었다.

티베트 문제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중국을 압박할 때 쓰는 단골 메뉴다. 중국 당국은 티베트 병합에 대해 전근대적인 ‘농노 제도’의 굴곡에서 해방시켰으며 경제적 여건 개선을 위한 투자 등으로 크게 나아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티베트의 독립은 물론이고 상당수 티베트인들이 바라는 자치 확대 조치를 허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 시 총서기는 취임 이후 ‘중화민족 부흥’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56개 민족을 하나로 묶을 정치이념으로서 민족주의를 강조한다. 이는 티베트 등 소수 민족에 대한 중앙의 통제가 강화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퉁런 룽우(隆務)사원의 불상을 모신 제단의 나무 모서리는 지금도 검게 그을려 있다. 종교의 자유와 티베트 독립을 외치며 죽어간 분신의 흔적이다.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할 정도로 경건한 종교 생활을 하는 티베트인들의 죽음의 항거가 언제 그칠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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