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태-고종석을 反사회적괴물로 키운 주범은 ‘아빠의 폭력’
7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살인범 심모 씨(33)는 지난해 2월과 4월 갈 곳 없는 자신에게 집을 내준 지인과 인터넷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을 잇달아 살해했다. 그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피해자를 목 졸라 살해한 뒤 태연히 망자(亡者) 행세를 했다.
▶본보 8일자 A15면 영화 ‘태양은 가득히’ 처럼… 살해 피해자 사칭해
중학교 3학년 때 유일하게 의지했던 어머니가 집을 떠나자 심 씨는 학교를 자퇴했다. 그러나 중학교 졸업장도 없는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인생에 실패했다는 자괴감과 무시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 결국 폭력 아빠가 그를 ‘반사회성 인격 장애 괴물’로 만든 것이다.
○ 평생 트라우마로 남는 아빠 폭력
전남의 한 초등학교 4학년 이모 군(10)은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 동생(9)을 데리고 가출했다. 아동보호기관에 찾아왔을 때 이 군의 등과 엉덩이, 종아리에는 쇠막대로 맞은 자국이 가득했다. 이 군의 아버지는 26세 때 이혼한 뒤 매일 술을 마시며 쇠막대로 이 군을 때리면서 아내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아버지의 폭력에 이 군도 변했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흉기를 들이대고 “다가오면 죽여 버리겠다”며 반항을 시작했다. 아동보호기관에 온 뒤로도 사소한 일에 다른 친구들에게 흙을 던지며 괴롭히거나 봉사자들에게 “칼로 죽이겠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물건을 마구 집어 던졌다. 이 군은 현재 분노 조절 및 심리 안정을 위한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아빠 폭력’ 피해 아동은 초등학생 42.1%, 4∼6세 12.7%, 1∼3세 11.1%로 나타났다. 가정에서 주로 생활하는 미취학 아동까지 감안하면 피해 아동이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은 “어린이는 굳지 않은 시멘트와 같아서 폭력 아빠가 준 상처는 장기간 심각한 문제를 남긴다”며 “나이가 어릴수록 폭력의 잔상은 더 오래 간다”고 말했다. 캐나다의 한 연구에 따르면 범죄자 3명 중 1명이 가정폭력에 노출됐고 어린이의 경우 비행 경험이 3배나 많았다.
○ 폭력의 대물림
서울에서 열두 살 난 아들을 키우고 있는 30대 백모 씨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며 컸다. 어른이 된 뒤 백 씨는 우연히 알게 된 아내와 ‘데이트 강간’으로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다. 백 씨는 아들이 태어난 지 1년 만에 “내 자식이 아니다”라며 아들을 때렸다. 초등학교에 간 뒤에는 “나와 너무 닮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며 4시간 이상 욕을 하고 때리기도 했다. 백 씨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폭력을 유일한 훈육 수단이라 믿고 있다. 백 씨의 아들은 스스로를 ‘왕따’라고 부르며 학교에 가길 거부하고 있다.
19일 아동학대예방의 날을 맞아 굿네이버스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등은 폭력 아빠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는 행사를 벌이기로 했다. 굿네이버스 경기도 아동보호 전문기관 김정미 관장은 “폭력 아빠의 폭력이나 폭언에 시달린 아이가 초등학교 때까지 충분히 치료받지 못하면 중학교 이후에는 회복하기가 더 힘들어진다”며 “어린 시절 학대 받은 아이는 폭력이 대물림돼 가해자가 될 위험도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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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웅·박훈상 기자 pi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