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한 흔적 없어 자해 아닌 타살”→“지혈해준 걸로 봐서 타살 아닌듯”
지난해 9월 17일 낮 12시경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원룸에서 불이 나 119소방대가 긴급 출동했다. 방안 화장실에 정신을 잃은 A 씨(24)가 쓰러져 있었다. 속눈썹을 붙인 채 화장을 한 상태였던 A 씨의 양쪽 목에는 흉기에 찔린 상처가 발견됐고 같은 해 10월 3일 숨졌다.
검찰은 A 씨와 9개월가량 동거했던 최 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2007년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서 일하다 알게 된 둘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 최 씨는 A 씨가 키우던 강아지에게 약을 먹여 죽게 하고, A 씨의 휴대전화로 A 씨의 친구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이간질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검찰은 A 씨가 발견되기 직전 주변 지인들에게 갑자기 4700만 원의 빚이 있다는 내용의 A 씨 명의 문자가 전달된 점을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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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심 판결 6개월 뒤인 9일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윤성원)는 살인이 아니라 A 씨가 자해를 시도한 뒤 숨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A 씨가 나에게 돈을 빌린 뒤 갚을 능력이 없자 나를 설득하다 자해를 했다. 지혈을 해준 뒤 나는 집을 떠났고, 불은 그 후에 났다”는 최 씨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을 일부 인정한 것이다.
검찰은 둘 사이에 채무관계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2심 재판부는 “자존심 때문에 주위에 알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A 씨가 자해를 한 뒤 스스로 문자메시지를 보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 과정에서 둘 사이에 우발적인 다툼이 벌어졌고 A 씨가 자해에 이어 스스로 불을 질렀을 수 있다고 봤다.
이어 재판부는 “유죄를 의심할 만한 여러 정황이 있지만 최 씨가 A 씨를 살해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증거재판주의의 원칙에 따라 간접 증거만으로는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하기로 했다. 뒤집힌 그날 밤의 진실은 결국 대법원 판결에서 밝혀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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