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히트작 ‘어쌔신’ 20일 무대 올려… 암살자 배역으로도 출연
스티븐 손드하임의 뮤지컬 ‘어쌔신’으로 연출가로 데뷔하는 배우 황정민은 “예고 연극반 시절 연출을 해봤고, 대학에서 무대미술을 전공했고 배우로도 많은 작품에서봤기 때문에 연출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면서도 “막상 연출을 맡고 보니 손드하임의 노래와 대본이 생각보다 어려워 고전 중”이라며 씩 웃었다. 샘컴퍼니 제공
어쌔신(암살자)은 현존 미국 최고의 뮤지컬 작가로 꼽히는 스티븐 손드하임이 1990년 발표한 작품. 링컨부터 레이건까지 역대 미국 대통령을 암살하거나 암살을 기도했던 인물 9명을 등장시켜 철저히 그들의 관점에서 암살사건을 풀어냈다. 2004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 토니상 5관왕을 차지했다. 국내에서 2005년과 2009년 두 차례 무대화됐지만 흥행에선 큰 재미를 보지 못했던 작품이다.
“2009년 국내 공연을 보면서 코믹한 작품을 너무 진지하게 푼 탓에 국내 관객이 어려워했던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의 마당극처럼 좀 더 쉽고 재밌게 풀면 관객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제작에 나서면서 연출까지 맡기로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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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에게 말했어요. 9명의 암살범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그 사람들이 암살한 이유를 밖에서 들어보면 어이가 없지만 그들 자신에게는 너무도 절실했거든요. 그들은 너무 외로워서 세상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일반 사람들이 바퀴벌레 하나 죽이는 것처럼 너무 쉽게 대통령을 죽이려 한 거였어요. 그 아득하고 슬픈 괴리감이 이 작품을 진짜 코미디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대중에게 황정민은 영화배우로 각인돼 있다. 하지만 그는 대학로 무명배우 시절을 못 잊어 끊임없이 무대를 찾는 귀한 존재다. 대학로 출신의 영화배우 대부분은 촬영스케줄이 바쁘다는 핑계로 무대를 멀리한다. 하지만 황정민은 올해 영화 ‘댄싱 퀸’ ‘전설의 주먹’과 드라마 ‘한반도’를 촬영하면서 ‘맨 오브 라만차’와 ‘어쌔신’ 등 두 편의 뮤지컬에 출연한다.
“대학로 배우 시절 몇 개월 고생해 올린 참 좋은 공연이 관객이 없어 막을 내리는 것을 보면서 ‘내가 꼭 유명해져서 이 좋은 공연을 관객에게 보여주리라’고 결심한 게 영화판에 가서 성공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는 생각이었죠. 그래도 ‘내가 설 마지막 장소는 무대’라는 초심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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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속 황정민은 미련해 보일 정도로 우직한 연기를 펼칠 때 빛을 발했다. ‘맨 오브 라만차’에서도 ‘불가능한 꿈’을 부르는 돈키호테일 때가 제격이었다. 그는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정말 보기 힘든 사람이다 보니 관객들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 연기하는 사람으로서도 힘이 난다”고 말했다.
현실에서 황정민도 크게 다르진 않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눈치 없게 대통령 암살을 다룬 뮤지컬을 들고 나왔다. 그것도 대작 뮤지컬들이 쏟아지는 연말에 흥행 여부가 불투명한 작품을. 게다가 젊은 후배들이 영화감독한다고 폼 잡을 때 크게 빛도 안 나는 뮤지컬을 연출하겠다고 달려든 그를 보면서 ‘돈키호테가 따로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단지 기자뿐일까. 내년 2월 3일까지. 4만∼8만 원. 02-744-4033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