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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시장경제의 모델’ 협동조합이 뜬다]협동조합의 기능과 효과

입력 | 2012-11-01 03:00:00

생산자-소비자 뭉쳐 일자리-생산적 복지 두 토끼 잡는다




《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사는 주부 김효영 씨(46)는 3년 전부터 전국여성농민회가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언니네 텃밭’에서 매주 유기농 먹을거리를 공급받고 있다. 매월 10만 원을 내면 시골에서 농민이 재배한 제철 채소와 반찬이 주 1회씩 배달된다. 김 씨는 “신장염을 앓던 남편을 위해 유기농 식품과 제철 음식재료를 찾기 시작했는데 몸에 좋고 믿을 수 있어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김 씨는 한 명의 서비스 이용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내년 1월부터 김 씨는 의결권을 행사하는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된다. 1000여 명의 회원이 가입한 ‘언니네 텃밭’이 협동조합으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

생활협동조합 매장은 이른 아침부터 붐빈다. 물건이 떨어지기 전에 신선한 농산물을 구입하려는 조합원이 몰리기 때문이다.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1동 ‘한살림’ 매장에서 농산물을 고르던 한 여성 고객(왼쪽)이 매장 직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올 12월 1일부터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돼 생산자, 소비자가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협동조합 법인의 설립이 가능해진다. 이 법의 시행을 앞두고 협동조합이 시장경제의 폐해를 치유할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협동조합이 활성화되면 풀뿌리 지역경제가 살아나 지역별로 새로운 일자리와 다양한 복지 서비스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시장과 정부가 실패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라며 “왼쪽 끝이 ‘정부 주도’이고, 오른쪽 끝이 ‘시장 주도’라면 협동조합은 중간에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따뜻한 시장경제의 모델”이라고 말했다.

○ ‘시장경제 보완재’ 협동조합이 뜬다

 

10월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1동 ‘한살림’ 매장. 66m²의 작은 가게에 아침부터 손님 10여 명이 계산대 앞에 줄을 섰다.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주부 이호경 씨(46)는 “이곳 식품을 먹으면서 갑상샘 질환이 나았고 아이 아토피 피부염도 사라졌다”며 “품질도 좋지만 다른 조합원, 생산자와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한살림은 국내 소비자 생활협동조합(생협) 중 가장 성공한 협동조합으로 꼽힌다. 친환경 유기농 제품에 특화해 소비자의 호응을 이끌어 내 창립 첫해인 1986년 1500명이던 조합원은 30만 명으로, 1곳이던 매장은 서울 45곳, 전국 100곳으로 늘었다.

협동조합이란 비슷한 일을 하거나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일종의 ‘회사’다. 영세 사업자나 소비자 등 ‘경제적 약자’들이 주로 뭉친다. 사업으로 이윤을 내는 건 기존 회사와 비슷하지만 조직 구성, 지향하는 목표는 주식회사 등과 크게 다르다.

주식회사가 영리를 최우선 목적으로 투자금을 모아 만든 조직이라면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권익 향상’과 ‘지역사회 공헌’이라는 공익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이다. ‘1주 1표’ 원칙에 따라 최대주주가 사실상 지배권을 행사하는 주식회사와 달리 협동조합은 ‘조합원 1인 1표’로 운영되는 조합원 공동 소유의 형태다.

주식회사는 주주총회가 배당을 결정하지만 협동조합은 출자금의 10% 이상 배당이 금지되고 잉여금의 10% 이상은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한다. 이익 창출이 ‘제1의 목표’인 주식회사보다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공익 도모에는 유리하다. 생협이 가공식품, 패스트푸드 대신 유기농 친환경 제품을 취급하는 이유도 이런 점 때문이다. 김기태 협동조합연구소 소장은 “협동조합은 출자 배당에 제한이 있고 1인 1표제이기 때문에 이익을 추구하는 출자자를 끌어들이기 어렵다”며 “초기에 대규모 자본을 필요로 하는 사업보다는 지역밀착형 소매 사업이나 영세상인 협력 사업에 알맞은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이전에도 개별 조합법을 바탕으로 농협, 수협, 중소기업협동조합 등이 존재했다. 하지만 1999년에 법적 근거가 마련된 생협을 제외하면 대부분 정부 주도로 만든 ‘준(準)공공기관’으로 협동조합 본래의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 5인 이상 모이면 누구나 설립 가능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 업종에 관계없이 5인 이상이 모여 협동조합을 세울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진 생협 등 일부 영역에서 300∼1000명 이상이 모였을 때만 조합을 세울 수 있었다. 공동 육아, 대리 운전, 전통시장, 시골 마을버스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만들어질 길이 열리는 것이다.

대구 서구에서는 동네 빵집 6곳이 뭉쳐 협동조합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서구와 빵집들이 힘을 합쳐 개발한 공동 브랜드 ‘서구맛빵’이 지역 주민의 호평을 받으며 매출이 전년보다 30% 이상 늘어나자 빵집 주인들이 조합을 조직해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정식으로 도전장을 내기로 한 것. 조합 설립을 준비하는 풍미당베이커리 손노익 사장은 “지금은 동네 빵집들이 기술과 브랜드만 공유하고 있지만 조합을 설립해 출자금을 모으면 즉석 제조를 위한 최신식 기계를 들여놓을 수 있고 공동마케팅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손 사장은 “이 지역 내에서는 대기업 빵집들과 맛으로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정부는 협동조합을 일자리와 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주요 해법으로 본다. 협동조합을 통해 영세 자영업자들이 뭉쳐 경쟁력을 키울 수 있게 하고, 협동조합 형태의 노인 돌봄, 보육 서비스 등이 많이 만들어지면 서비스 제공자나 복지 수혜자 모두에게 유리한 ‘생산적 복지’가 가능해진다는 복안이다.

박창환 재정부 협동조합준비기획단 팀장은 “지역사회의 복지문제 해법은 해당 지역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며 “경제·사회적 약자들이 협동조합을 통한 창업을 확대하면 일자리 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소매-요식업 등 맞춤형으로 업종 특화해야” ▼

■ 협동조합 분야 석학 자마니 伊 교수 방한


“협동조합은 날로 심각해지는 부(富)의 불평등한 분배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단입니다.”

협동조합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스테파노 자마니 이탈리아 볼로냐대 교수(경제학·사진)는 31일 동아일보와의 단독인터뷰에서 “협동조합은 경제영역에서 민주주의를 실현시켜줄 모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자마니 교수는 12월 1일로 예정된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에 앞서 협동조합의 역할을 알리고, 필요한 정책을 조언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와 특임장관실, 재단법인 행복세상 초청으로 이날 방한했다.

자마니 교수는 “주식회사는 자본이 사람을 통제하지만 협동조합은 근로자와 소비자가 자본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1주 1표’를 기반으로 운영돼 최대 주주가 지배하는 기업과 달리 협동조합은 ‘1인 1표’가 적용돼 조합 내 힘과 자본이 경영진과 자본가에게 집중될 수 없다. 그는 “(이런 방식을 통해 협동조합은) 부를 모두에게 똑같이 분배하진 않지만 보다 합리적이고 정의롭게 나눌 수는 있다”고 강조했다.

12월 대통령선거를 맞아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를 두고 진보좌파와 보수우파가 대립하는 한국의 상황에 대해 자마니 교수는 “그런 낡은 접근방식으로는 복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북한 정권이 붕괴되고, 북한 주민이 대거 휴전선을 넘어올 경우를 가정한 뒤 “보편적 복지로는 이들을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대로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복지를 제공하면 날로 늘어날 의료비 등의 부담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러한 딜레마를 풀 수 있는 해답으로 협동조합을 꼽았다. 지역주민이 원하는 복지를 협동조합이 사업화하면 꼭 필요한 서비스를 지속가능한 비용으로 제공할 수 있어 시민사회와 결합된 협동조합은 국가재정을 아낄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협동조합이 시장경제의 모든 폐해를 치유할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 역시 “민주주의는 모두가 말할 권리가 있지만 조합 경영에서 모두가 한마디씩 하면 의사결정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며 “민주주의적인 요소는 이윤을 창출해야 할 사업모델로선 무시하기 힘든 단점”이라고 평가했다. 또 “일반 기업은 해고가 비교적 자유롭지만 협동조합은 ‘모두가 함께 가야 하는’ 특성상 경영적인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라고 인정했다.

이런 이유로 자마니 교수는 “협동조합이 적합한 업종을 잘 골라 특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자동차나 전자제품 제조처럼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업종에선 협동조합이 어렵고 요식업이나 소매업 택시 등 소비자 개개인의 요구에 맞춤형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는 업종이 협동조합에 적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4일까지 한국에 머무는 자마니 교수에게 정부와 대학, 언론, 협동조합 현장, 시민사회단체 등이 앞다투어 만남과 방문을 요청했다. 협동조합에 대한 한국사회의 큰 관심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미 대기업들이 경제영역 곳곳을 장악한 한국에서 협동조합이 파고들 틈이 있을까 싶지만 자마니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협동조합에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독과점은 초기엔 성장을 촉진하지만 심화될수록 경제성장을 오히려 방해한다”며 “한국 경제에 재벌은 필요하지만 재벌만 존재해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기업과 협동조합이 공정하게 경쟁한다면 한국 경제는 건강하게 발전할 것”이라며 협동조합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