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환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모든 나라는 전쟁 영웅을 갖고 있고, 그들을 존경한다. 후손들이 존경하는 전쟁 영웅이 있어야만 제2, 제3의 전쟁 영웅이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맥아더 장군,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있다. 영국에는 처칠, 몽고메리 장군이 있고, 독일에는 로멜 장군이 있다.
그렇다면 60여 년 전 500만 동족의 사상자를 낸 6·25전쟁을 치른 우리는 6·25의 영웅을 갖고 있는가. 이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은 대부분 백선엽 장군을 지목한다.
광고 로드중
백 장군의 전투지휘 백미는 다부동 전투다. 최후의 낙동강 방어 전투에서 병사들이 공포에 질려 집단으로 퇴각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때 백 장군은 권총을 쏘며 선두로 달려 나가 소리쳤다. “내가 물러서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 너희들이 물러서면 내가 너희들을 쏘겠다.” 결국 백 장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냄으로써 대한민국의 운명을 지켜냈다.
백 장군은 우리보다 오히려 미군들에게 더욱 존경받는 전쟁 영웅으로 알려져 있다. 주한미군 사령관은 이·취임식 때마다 “존경하는 백선엽 장군”으로 시작하는 게 전통이 되었다. 미군 장성 진급자의 모임인 캡스톤그룹이 한국에 오면 백 장군을 만나는 것이 필수 코스다. 주한미군 장성 모두가 참가하는 6·25 전적지 견학에는 반드시 백 장군을 초대한다. 미 국립보병박물관은 백 장군의 6·25 경험담을 육성으로 담아 전시하고 있다. 백 장군의 6·25 회고록 ‘군과 나’는 미국의 주요 군사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19일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민주통합당 김모 의원이 백 장군을 ‘민족반역자’라고 비하했다. 일제강점기를 모르고 6·25전쟁을 모르는 젊은이의 발언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기가 막힌다.
백 장군이 태어난 1920년은 일제강점기였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세상 물정을 모르는 채 10, 20대를 보낸 청년에게 일본은 자기 나라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에 의해 교육받고 일본의 체제에서 근무한 것을 탓한다면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중 백 장군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광고 로드중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이 이 시대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면 어떤 예우를 받았을까? 분명 성인 대우를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영웅은 영웅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만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웅을 인정하지 않는 풍토에서 어떻게 영웅이 만들어질 수 있는가. 그래서 지금 존경할 만한 영웅이 없는 나라에서는 앞으로도 영웅이 나오기를 기대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박세환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