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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컬처 IN 메트로]‘고시생’ 줄어도 ‘고시원’은 성업중

입력 | 2012-10-17 03:00:00

소설-드라마 속 현대판 쪽방
공부 아닌 가난 이유로 거주… 화장실-창 유무에 가격 달라




책상 아래로 발을 뻗어야 몸을 펼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노량진의 한 고시원. 이곳은 창문이 있어 그나마 시설이 좋은 편에 속한다. 동아일보DB

“그것은 방이라고 하기보다는 관이라고 불러야 할 크기의 공간이었다.”

소설가 박민규 씨의 단편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주인공 ‘나’는 아버지 사업이 부도난 뒤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다 결국 월세 9만 원짜리 갑을고시원으로 이사한다. 옆방 기침소리와 코푸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리는 고시원에서 주인공은 점점 ‘소리가 나지 않는 인간’이 되어간다. 소설의 배경은 1991년. 처음 ‘고시원은 고시생만 사는 곳 아니냐’며 걱정하던 주인공은 ‘변화의 이유는 알 수 없다. 아무튼 1991년은 일용직 노무자들이나 유흥업소 종업원들이 갓 고시원을 숙소로 쓰기 시작한 무렵’이라고 말한다.

김애란 씨의 단편 ‘자오선을 지나갈 때’에도 비슷한 공간이 등장한다. 배경은 ‘갑을고시원…’보다 8년 뒤인 1999년 노량진 학원가다.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교육대학에 지원자가 몰리면서 대입에 실패한 주인공 아영은 방 한 칸을 커튼으로만 구분해 4명이 함께 쓰는 이른바 ‘독서실’에 입주해 재수한다. 의자를 책상에 올려야만 잠잘 공간이 생길 정도로 좁지만 방값이 싸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다.

요즘 드라마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KBS2 주말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서도 고시원이 등장한다. 주인공 서영(이보영)은 고시공부에 집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하기 때문에 고시원을 찾는다. 드라마는 영등포구 신길동 대방역 근처의 고시원에서 촬영했다. 사법고시 준비생인 서영과 달리 해당 고시원은 노량진과 가까워 주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2012년 10월 현재 고시원 정보사이트에서 검색되는 고시원 방값은 소설 속 ‘갑을고시원’에 비해 2배 넘게 뛰었다. 이름도 고시원 대신 오피스텔이나 모텔을 연상시키는 고시텔, 리빙텔, 원룸텔 등으로 바뀌었다. 복도 폭이 좁은지, 공용화장실과 샤워실을 써야 하는지, 소방설비를 갖췄는지, 방에 창이 있는지, 그 창이 복도 쪽으로 나 있는지 바깥으로 나 있는지 등에 따라 가격은 약 20만 원에서 50만 원 이상까지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고시원이 취업준비생, 젊은 직장인, 일용직 노동자 등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서울시 주거취약계층 현황’에 따르면 서울시내 주거취약계층은 지난해 말 11만3099가구, 11만8108명으로 조사됐다. 전국 주거취약계층의 절반에 가까운 수다. 이 중 고시원에 거주하는 인구는 7만6511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