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는 독서, 홍보전문가는 객관성이 힘”
▼ “번역가는 영어실력만큼 창의력·어휘력이 중요” ▼
《‘쿵푸팬더’, ‘반지의 제왕’, ‘슈렉’.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바로 같은 번역가의 손을 거쳤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형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월트디즈니, 픽사, 드림웍스의 대작들을 도맡아 번역하는 외화번역가 이미도 씨가 그 주인공. 통번역가를 꿈꾸는 인천 인화여고 2학년 김빛나 양(17)이 최근 ‘신나는 공부’의 도움을 받아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사 회의실에서 이 씨를 만났다.》
영화 마니아, 외화번역가가 되다
외화번역가 이미도 씨(오른쪽)를 만난 통번역가를 꿈꾸는 인천 인화여고 2학년 김빛나 양. 사진 이성은 기자 sunmin112@donga@com
“번역가가 되신 계기가 있나요?”(김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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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부터 단어 하나를 노트 다섯 장에 빼곡히 적어가면서 아버지에게 영어를 배운 그에게 영어는 장애물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작한 첫 작품이 1993년 영화 ‘블루’. 이후 그는 영화 번역의 매력에 빠져 그대로 외화번역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김 양은 “통번역가가 되기 위해 통번역학과에 진학하려고 하는데 실제 번역가가 되려면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좋겠느냐”라고 물었다. 다음은 이 씨의 답변.
외화번역가가 되려면 통번역학을 전공하거나 방송사에서 운영하는 영상 번역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하는 것도 좋다. 일부 방송사는 영상번역가를 영입하기도 하므로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이런 기회를 잡아 방송사에 들어갈 수도 있다. 미국 영화사 한국지사의 문을 직접 두드리는 방법도 있다. 외화번역계는 정기적으로 번역가를 채용하는 시스템이 없으므로 직접 찾아가 자신이 참여한 작품을 보여주면서 실력을 검증받아야 한다. 미국 현지의 영화사가 한국인 번역가를 뽑는 데 참여하기도 하고 직접 번역가와 소통을 하기 때문에 평소 영어회화 실력을 갖추는 일도 중요하다.
외화번역가는 한국어를 더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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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이 “외화번역가로서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느냐”라고 묻자 이 씨는 “번역가에겐 영어 실력보다 한국어 표현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번역한 ‘쿵푸팬더’ 1편 중 주인공 ‘포’가 동료인 ‘크레인’(학)에게 던지는 대사 “That Kungfu stuff was tough, right?”가 한 예다. 이를 직역하면 “너도 쿵푸 배울 때 힘들었지?”지만, 그는 “너도 예전에는 학을 뗐지?”로 번역했다. 어려운 일로 진땀을 뺀다는 우리말 ‘학을 떼다’와 크레인이 학이라는 점을 절묘하게 겹친 언어유희였던 것.
그만큼 번역에는 창의력과 언어적 센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이 씨는 독서를 강조했다. 실제로 매주 토요일이면 서점에 가는 그는 분야를 막론하고 일주일에 최소 3권의 책을 읽는다.
“독서로 백과사전만큼의 지식을 쌓아야 해요. 신문으로는 비판적 사고를 키울 수 있죠. 그래야 어휘력도 풍부해지고 우리말을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요. 번역가는 ‘할리우드산 활어 요리가’예요.”(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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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보는 ‘포장’ 아닌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는 거죠” ▼
자신들의 롤모델인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교수(가운데)를 만난 인천 서운고 3학년 김진형 양(맨 왼쪽)과 충북 흥덕고 2학년 강지애 양.
한국 문화와 역사를 전 세계에 알리는 일에 관심이 많다.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교육원 객원교수(38)의 홍보 활동을 보면서 우리 문화 알리기에 더욱 뜨거운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두 학생의 공통점. 두 학생은 최근 ‘신나는 공부’의 도움을 받아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에서 서 교수를 만났다.》
○ 대학 때부터 시작된 한국 홍보
자칭 타칭 ‘한국홍보전문가’인 서 교수. 그는 19년째 스스로 ‘민간외교관’을 자처하며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서 교수의 홍보 소재는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라면 어느 것이든 가리지 않는다. 아리랑, 한글, 비빔밥, 막걸리 등이 이미 그의 손을 거쳐 해외 유명 언론이나 옥외 광고로 소개됐다. 세계 주요 박물관에 한국어로 된 안내서를 만들어 제공하는 일도 맡는다.
홍보 활동의 시작은 서 교수가 대학생 때였다. 유럽 배낭여행 중 ‘한국’을 아는 외국인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서 교수. 유행처럼 번지던 ‘세계화’의 흐름 속에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작은 것부터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려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아르바이트로 경비를 모아 다시 찾은 유럽에서 서 교수는 해외 배낭여행객들에게 태극기가 그려진 배지를 달아주기 시작했다. 서 교수의 첫 홍보 활동이었다. 최근엔 가수 김장훈, 배우 송일국, 한국체육대 학생 40여 명과 함께 ‘릴레이 수영’ 방식으로 직접 헤엄쳐 독도 땅을 밟는 ‘8·15 독도 횡단 프로젝트(작은 사진)’를 마쳤다.
“지금껏 독도를 10번도 넘게 다녀왔지만 이번 방문이 가장 가슴 벅찼어요. ‘우리 땅이기 때문에 우리만이 수영해서 갈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행사였거든요.”(서 교수)
○ 홍보의 기본은 객관성
“그렇다면 교수님만의 흔들리지 않는 ‘홍보 원칙’은 무엇인가요?”(강 양)
홍보는 예쁘게 ‘포장’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포장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쉽게 전달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게 서 교수의 주장이다.
“‘객관성’과 ‘정정당당함’이 기본입니다. 우리나라의 안 좋은 모습을 좋게 꾸밀 필요도, 장점을 더 극대화할 필요도 없어요. 돈을 슬쩍 쥐여주는 것처럼 부당한 방법도 절대 안 되겠죠.”(서 교수)
서 교수는 “한국홍보전문가를 꿈꾼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라는 김 양의 질문에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를 알아보는 노력이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원래 우리나라 것’이라며 감정적으로만 대응하는 게 아니라 본질을 알아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보’라 해서 거창한 활동만 찾지 마세요. 요즘 학생들이 즐겨 사용하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이용해 외국인 친구들에게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일부터 추천해요. 아, 직접 독도 땅을 밟아보는 것도 중요하답니다.”(서 교수)
글·사진 오승주 기자 canta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