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사진 속 내 친구가 멋져요… 세상이 예뻐요”
일부 학생은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진을 찍었다. ‘저도 했어요’라며 학생들이 각자의 카메라 모니터를 자랑스럽게 내보이고 있다.
정신지체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크게 생물학적 환경적 또는 사회문화적 원인으로 나뉘고, 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사례 등이 있다.
정신지체 자체보다는 이차적인 정신질환과 후유증 및 사회적응에 대한 치료가 필수적이다. 개인 정신치료를 포함한 가족치료와 행동치료 및 문제되는 행동에 대한 약물치료를 시행할 수 있으며 간질과 같은 여러 합병증에도 대비해야 한다.
도봉산 자락에 편하게 기대듯 위치한 특수학교. 한 교실에서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가끔씩 터지는 탄성이 교실 창을 넘어 산자락을 타고 퍼져 나간다. 바로 캐논코리아컨슈머이미징(사장 강동환)이 사회공헌 사업으로 실시하는 두 번째 나눔교육 현장이다. 그 자리에는 서울인강학교 학생들이 사진교육을 받고 있었다. 서울 도봉구와 의정부 쪽에 사는 정신지체(지적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다. 참석자는 20명. 이들의 교육을 도우려고 캐논의 강사진, 자원봉사 선생님과 공익요원 등 도우미 8명도 함께했다. 이 학교의 학생 수는 초중고교 전공과 모두 합쳐 150명이지만 이 중 20명만이 사진교육을 받았다. 나머지 정신지체 학생은 단시간 내에 사진교육을 이수하기 어렵다는 선생님들의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번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어린이들은 교육 중 산만해질까봐 우려스러웠다면 이번 정신지체 학생들은 과연 교육내용을 따라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기우였음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진교육이 시작되자 어색했던 분위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금방 수업 열기가 달아올랐다. 학생들은 강사의 지시에 따라 카메라 작동법을 무난히 배웠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도 표현했다. 콤팩트카메라에 장착된 어안 기능, 토이 기능 등 각종 카메라 장치의 활용은 물론이고 광각렌즈나 망원렌즈의 역할 같은 광학 개념도 이해했다. 학생들은 자신이 카메라 기능을 이용해 찍은 우스꽝스러운 친구의 모습이나 다른 친구보다 멋지게 찍은 모습이 담긴 카메라 모니터를 강사를 향해 자신 있게 내밀어 보였다. 강의를 진행하던 캐논코리아의 임슬기 씨가 수업 도중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일 정도였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이 어떻게 교육내용을 잘 따라올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자원봉사 선생님들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이들의 정신연령이 대체로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라 이날 수업은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날 재능나눔을 주선한 차인성 교사는 “정신지체 학생들의 증세는 사람마다 그 경중이 많이 다르다. 교내에서 사진교육이 가능한 학생을 선발했고 디지털 카메라가 보편화되면서 이미 집이나 외부에서 카메라를 만져 본 학생도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의는 주제가 있는 사진 찍기로 이어졌다. 이날 정한 주제는 ‘내 친구’. 학생들이 일반인처럼 이리저리 다니면서 풍경이나 풍물 사진을 찍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현실을 감안했다, 학생들이 가장 쉽게 만나고 찍을 수 있는 존재는 바로 ‘내 친구’였다. 매일 학교에 가면 얼마든지 친구를 만날 수 있고 그 가운데서 서로의 모습을 찍어주다 보면 우정도 쌓이고 사진에 대한 흥미도 더 커질 것이다.
강사 임 씨는 학생들에게 친구 사진 찍기의 비법을 전수했다. “눈높이로만 찍지 말고 다양한 위치에서 찍으세요. 친구를 위에서 45도 각도로 찍으면 ‘얼짱’ 각도여서 귀엽게 나오고 아래에서 위로 찍으면 ‘롱다리’가 돼 늘씬하게 보여요”라며 정신지체 학생들에게 맞는 눈높이형 사진교육을 선보였다. 수업은 학생들의 호응 속에 마무리됐다.
학교에서 사진교육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사진교육 날짜를 되묻는 등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정신지체 학생들에겐 꼭해보고 싶은 도전거리였던 만큼 이날 강의는 당연히 학생들의 적극성이 돋보일 수밖에 없는 수업이 되었다.
서울인강학교 장인석 교장은 사진의 교육적 효과를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었다.
“정신지체 학생들에게 사진은 찍고 찍히는 과정 모두가 교육입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핵심 피사체를 어디에 놓을지 구도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하는 그 자체가 아이들에게 사물의 균형과 배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바로 아름다움에 대한 고민입니다. 이는 예를 들면 교실 환경미화를 할 때 컵과 화분의 배치를 이전보다 훨씬 멋지게 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사진에 자주 찍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자세를 할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하면서 또 다른 자기표현의 방식을 배우고 익히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사진교육의 효과이고 제가 기대하는 바입니다.”
이번 사진교육을 계기로 장 교장은 사진을 교육에 적극 활용할 계획도 세웠다. 이번에 캐논코리아가 기증한 카메라 10대로 재능이 보이는 학생들에게 사진교육을 하기로 했다. 당장 서울중등교육사진연구회가 10월 주최하는 청소년사진대회에 학생들의 작품을 출품하고 내년 봄 학예회에는 사진전시회도 같이 개최할 예정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사진작가도 나오지 않겠느냐며 장 교장은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이번 사진 재능 나눔교육을 계기로 이런 일이 많이 개선되지 않을까 싶다. 정신지체 학생들의 사진 실력이 일취월장해 친구들 사진은 물론이고 졸업생 기념사진도 맘대로 척척 찍고 찍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평소엔 그냥 찍다가 →대상 고르더니→원하는 표정 찰칵▼
■ 윤서의 ‘초보탈출기’
사진을 찍기 전에 친구들에게 ‘야, 이렇게 해봐’라며 포즈를 요구하는 윤서.
재능 나눔 교육을 한 지 일주일 만인 9월 20일 서울인강학교를 다시 찾았다. 운동장에서는 차 씨가 점심시간을 이용해 윤서에게 사진을 가르치는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직접 윤서에게 몇 가지 궁금한 질문을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단답형이었다. “사진을 자주 찍어보니 어땠어요”라는 질문에 “좋았어요”란 대답이 전부다. “어떤 사진을 찍어보니 좋았느냐”는 질문에는 그저 웃기만 한다. 옆에서 선생님이 구체적으로 풀어 설명하면서 답변을 유도하자 그제야 “친구들 사진을 찍어주니 즐겁고 친구들이 좋아해서 본인도 좋다”고 대답한다. 차 씨를 통해 윤서에게 한 주 동안 있었던 사진 얘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특정 대상 없이 막연하게 사진을 찍었습니다(사진1). 며칠 지나면서 주로 자기와 친한 친구 중에서 찍고 싶은 대상을 고르더군요. 하지만 사진에 친구의 얼굴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이 무엇을 찍고자 하는지 아직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어요(사진2). 일주일이 돼 갈 무렵 드디어 친한 친구들에게 특정 자세를 요구하거나 표정이 좋은 순간에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사진3). 친구 중 누구를 찍으면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지도 감각적으로 알게 되었고요. 일주일 만에 나름 성과를 낸 셈입니다.”
이렇듯 윤서는 정신지체인으로서 짧은 시간에 일반인에 가깝게 사진 분야에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반면에 자신이 넘기 어려운 나름의 한계도 경험해야 했다. 카메라 기능 중에 예민하게 손가락을 눌러야 하는 반 셔터 기능은 신체적 한계로 잘 수행해내지 못했다. 또 자신이 사진을 찍기 전에 뭘 어떻게 찍어야겠다는 의식 역시 정신적인 문제인지라 뚜렷이 개선되지 않았다. 이런 점은 윤서가 앞으로 계속 사진을 찍더라도 어느 정도 개선될지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단지 윤서가 학창생활 동안 카메라라는 좋은 친구를 통해 스스로 이 한계를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인강학교 학생들은 고등학교 교육이 끝나면 취업을 위한 전공과에 한 해 정도 더 다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정신지체 장애의 정도에 따라 뿔뿔이 흩어진다고 한다. 이들 중 10% 정도는 국가나 민간기업이 할당한 분야에 취업해 주로 업무보조 일을 하며 생활을 영위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평생 위탁시설이나 가족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우리나라의 정신지체인 수가 작년 기준으로 13만 명(2012년 보건복지부 장애인 실태조사)이 넘는다. 따라서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였거나 앞으로 놓일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이곳 학생들도 졸업하면 역시 예외가 아닐 것이다.
윤서는 그나마 졸업 후에도 집안 형편이 나아서 가족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고 한다. 본인에게 장래희망을 묻자 “보조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졸업 후 학교에 취업해 선생님의 수업보조를 하는 특수교육보조원이 되고 싶다는 주변의 설명이다. 어쨌든 긍정적이며 뭔가를 꿈꾸는 윤서의 모습이 대견했다. 윤서에게 막 배운 사진 찍기가 남은 학창생활은 물론이고 나머지 인생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글·사진=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