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장영희교수 장학금… 수혜 학생-유족의 만남
고 장영희 전 서강대 교수의 가족(오른쪽 앞부터 오빠 병우 씨, 여동생 순복 영주 씨)이 2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에서 ‘장영희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을 만나 격려하고 있다. 장학생들(왼쪽 앞에서 두 번째부터 조희윤 이연희 김선민 씨)은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장 교수님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왼쪽은 이종욱 서강대 총장.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연희는 요가를 좋아한다고? 영희는 ‘마음의 요가’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익숙하지 않아도 시도 읽고 음악도 들어야 한다면서.”
“선민아, 영희 말대로 쓰러지는 게 실패가 아니라 쓰러져서 못 일어나는 게 실패야.”
“언니 분, 교수님과 많이 닮으셨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 교수님이 쓰신 영어 교과서로 공부했는데.”
장 교수는 평소 제자들을 끔찍이 사랑했다. 강의에 들어오는 학생 이름은 모두 외웠다. 동아일보 필진 시절에는 ‘동아광장’ 칼럼에, 또 자신의 저서에 학생들의 사연을 자주 소개했다. 눈을 감기 전에는 제자들이 시신을 운구해줬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영림 씨(52)는 “언니가 평소에 공부를 하고 싶어도 가정형편 때문에 못하는 학생이 제일 안타깝다고 했다. 이공계는 장학금이 많은데, 인문계는 별로 없어서 장학금을 꼭 마련해주고 싶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딸을 보내고 어머니 이길자 씨(85)는 자녀를 모두 모아놓고 ‘영희의 인세통장’을 내밀며 말했다. “이걸로 서강대에 장학기금을 마련해주자. 그게 영희 뜻인 것 같다.”
어머니 이름으로 만든 통장에는 장 교수가 세상을 떠난 날 출간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의 인세가 들어 있었다. 병상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원고를 고쳤지만 정작 장 교수는 보지 못한 책이다. 가족은 여기에 조의금을 더해 2009년 9월에 3억5000만 원을 서강대에 전달했다.
이렇게 시작한 뒤 이듬해 가을부터 매 학기 학생 3명에게 장학금(등록금의 3분의 2)을 지급했다. 장 교수는 세상에 없지만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은 가족을 통해 이어진 셈이다.
가족들은 장학금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들과 식사를 함께한다. 장 전 사장의 제안이었다. “영희 제자들이니 그냥 만나고 싶었다. 영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장 교수가 잊혀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장 전 사장은 “‘잊혀지지 않는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는 표현이 책에 나온다. 학생들이 영희를 기억해주니 영희는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다”고 말했다.
장 교수가 제자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공간도 생겼다. 영문학과 강의를 가장 많이 하는 정하상관 315호를 서강대는 이날 ‘장영희 강의실’로 지정했다. 작고한 교수 이름으로 강의실 이름을 지은 건 이 학교에서 처음이다.
장 전 사장은 오후 5시에 열린 현판 제막식에서 말했다. “영희가 회갑을 맞은 9월, 영희처럼 맑고 싱그러운 날, 영희 이름으로 강의실을 명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생들이 영희를 기억할 계기가 또 하나 생겨 정말 기쁩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