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도전기를 시작할 땐 예비 엄마 체험기를 쓰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대부터 80대까지 남녀 불문한 독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임신 출산 육아의 고민이 ‘내 것’이 아니더군요. 우리 가정, 우리 사회의 숙제였습니다.
한 60대 남성은 “아이들 다 키운 것도 모자라 지금은 손자 손녀 돌보느라 스트레스로 대상포진에 걸렸다”는 e메일을 보내 왔습니다. 당신처럼 손자 손녀 키우다 허리 다치고 손목 다친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라면서 말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며 맞벌이를 했다는 50대 여성 독자는 “20년 전 고민을 내 아들 딸이 그대로 물려받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자식 낳아 키우며 ‘일이냐, 아이냐’ 하는 고민을 세대가 거듭해서 되풀이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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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누구나 ‘저출산 문제야말로 국가적 재앙’으로 이야기하는 시대니까요. 그 덕분에(?) ‘죄인’이던 임신부들은 ‘애국자’로 신분상승을 했습니다. 정부도 혈세를 퍼부었습니다. 1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따라 2006년부터 5년간 42조 원을 투입했습니다. 같은 기간 태어난 아기는 232만여 명. 단순 계산하면 아이 한 명당 1800만 원이 돌아갔을 엄청난 액수입니다. 과연 15년 전 아이를 쉬쉬하며 낳았던 시절과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30대 중반의 한 직장 여성은 ‘엄마 도전기’를 읽으며 “눈물 콧물 다 쏟아냈다”는 e메일을 보내 왔습니다. 그는 20개월짜리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하려니 어린이집 대기번호는 여전히 60번대. 어쩔 수 없이 충남 공주의 친정에 아이를 맡겼습니다. 주중에는 서울에서 일하고, 주말에 아이를 보러 다닌 지 1년이 넘는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아침에 눈 뜨기 전에 도착하려고 토요일이면 새벽 4시에 출발하지만, 일요일 헤어질 때마다 눈물 범벅인 아들에게 항상 미안했다는 그.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밝아집니다. “오늘이 도우미 아주머니 면접 보는 날이에요.” 형편이 어렵더라도 아이와 함께 지내기로 결정했답니다. 월 160만 원에 아이를 돌봐 주는 조건인데, 그나마 싼 가격이랍니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에 쏟아 부은 천문학적인 돈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시행되는 2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에는 무려 77조 원이 투입된다고 합니다. 저는 임신 후 50만 원에 해당하는 진료 바우처를 받은 게 전부입니다.
강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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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