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 이승환 교수 주장
조선시대 유학자 남명(南冥) 조식(1501∼1572)이 선현들의 언행에서 수양에 유익한 부분을 골라 엮은 책 ‘학기유편(學記類編)’에는 성리학을 설명하는 도표 ‘학기도(學記圖)’가 24도(圖) 나온다. 이 중 남명이 그린 것은 5도에 불과하고 14도는 원나라 학자의 저서에 실린 도표를 옮겨 온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학기유편의 범례에는 학기도 24도 중 17도가 남명이 그린 것으로 나온다.
이 교수에 따르면 그는 20여 년 전 처음 학기도를 본 뒤 범례에 쓰인 대로 17도 모두 남명이 그린 도표인지 의구심이 들어 중국 대만 일본 미국 등지로 사서장도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일본 도쿄(東京) 국립공문서관에서 1337년 간행된 12책 분량의 사서장도 초간본을 발견했다.
이승환 고려대 교수가 일본 도쿄 국립공문서관에서 발견한 원나라 유학자 정복심의 ‘사 서장도’ 초간본 표지. 남명 조식의 ‘학기유편’에 실린 도표 24도 중 14도의 출처가 ‘사 서장도’임이 확인됐다. 이승환 교수 제공
이 교수는 정복심의 도표가 학기유편에 남명의 도표라고 실린 데 대해 “누군가의 고의가 아니라 편집자의 착오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기도 중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상단에 ‘임은 정씨 복심 역유일도(林隱程氏復心亦有一圖)’라는 설명이 달려 있는데 이는 ‘임은 정복심에게는 또 하나의 도표가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 이 교수는 “편집자가 정복심의 도표를 남명의 것으로 둔갑시키려는 고의가 있었다면 정복심이라는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당시 사서장도는 희귀한 책이어서 이를 직접 보지 못한 학기유편 편집자들이 이 도표들을 남명이 그린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1980년대부터 남명의 학기유편에 대한 연구열이 일기 시작했고 30여 년간 풍성한 연구 성과가 쏟아져 나왔으나 이제 이 도표들의 상당수가 남명의 자도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재고(再考)돼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되어 유감”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의 학설과 다른 내용을 공개한 데 대해 그는 “내 나라의 문화유산에 흠집을 내야 하는 악역을 담당하기가 고통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