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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학 속에 피어나는 예술의 꽃… 신이여, 고통을 주소서

입력 | 2012-09-18 03:00:00

[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




캐리커처 최남진 namjin@donga.com

이번에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를 두고 여전히 “불편하다” “여성에 대한 가학적 시선이 변하지 않았다”라는 평가가 있지만, 이 영화는 정반합의 고통스러운 변증법을 경유한 김기덕 예술세계의 분명한 진화이다.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무척 공교로운 현상 하나를 발견한다. 그가 직접 ‘주연배우’로 나선 영화를 선보인 뒤 그 이듬해에 내놓는 영화는 예외 없이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주요 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이다.

2004년 한 해 동안 ‘사마리아’와 ‘빈집’으로 베를린과 베니스 영화제에서 각각 감독상을 받은 순간으로 되돌아가 보자. 그 한 해 전인 2003년 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내놓으면서 가학과 피학의 핏빛 세계를 통해 세상을 향해 불만을 토해 내던 자신의 과거와 결별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주인공으로 출연한 김기덕은 차오르는 분노를 우물우물 씹어 죄책감으로 만들어 삼키면서 스스로를 구원하려 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보인다. 한 해 뒤에 만든 ‘사마리아’와 ‘빈집’에서 그의 인장이나 다름없는 불편한 살육 장면이 눈에 띄게 줄면서 희생과 구원의 메시지가 부쩍 강조되는 것은 ‘분노하고→치유하고→스스로를 구원하는’ 김기덕의 내면적 진화 과정의 판박이다.

이후 김기덕은 ‘활’(2005년) ‘시간’(2006년) ‘숨’(2007년) ‘비몽’(2008년) 등을 내놓지만, 그는 더는 새로운 발언을 하는 데 실패한다. 바로 이때, 그에게 쇼크에 가까운 변화가 찾아왔다. 자신이 각본을 쓴 ‘풍산개’의 연출을 맡기로 했던 수제자 장훈 감독이 자신을 떠나 메이저 투자배급사와 손잡고 ‘의형제’를 만들면서 출세한다. 그는 이를 배신으로 여겨 분노에 떨었다. 산속으로 들어가 수년간 홀로 살면서 급기야 ‘폐인’이 되었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김기덕 감독의 진화한 내면이 보이는 영화 ‘피에타’. 뉴 제공

김기덕은 자신의 황폐한 처지를 셀프카메라로 담아 2011년 ‘아리랑’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다시 돌아왔다. 좌절을, 패배감을 예술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이후 내놓은 ‘피에타’가 자본주의의 참혹한 현실을 꼬집은 것은 어쩌면 제자를 훔쳐간 장본인이라고 믿는 그 ‘자본주의’에 대한 복수심의 표현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피에타’에서 그는 그저 욕구불만을 표출하는 ‘루저’에 머무르지 않는다. 김기덕은 스스로 치유하고 또 극복한다. 가학을 통해 사랑하고, 사랑을 통해 복수하고, 피학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는 영화 속 인간들의 모습은 바로 자신의 내면이요, 영혼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예술은 자학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예술가에게 결핍과 분노는 피와 살이다. 화가 이중섭은 찢어지는 가난과 가족을 향한 그리움 속에서 버려진 담뱃갑 속 은박지를 못으로 긁어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예술적 영혼을 불태웠다.

황금사자상을 받은 ‘피에타’가 극장가에서 반짝 인기를 끌며 손익분기점인 관객 30만 명을 막 넘어섰지만, 그는 다음 작품에 대한 관객의 호의적인 반응을 절대로 기대해선 안 된다. 그가 아무리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이미지를 친근하게 바꾸려 해도, 그의 다음 작품은 여전히 극장가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반응을 얻을 것이고, 그는 또 제작비를 조달하기 위해 ‘똥끝’이 탈 것이다. 그는 또 상처받고, 죽을 것처럼 분노할 것이며, 어쩌면 숙명처럼 또다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다.

그것이 예술가의 길이다. 현실이 비루하고 뇌가 빠개질 것처럼 고통스러울수록 예술은 더욱 신(神)을 향한다. 피에타! 신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예술가여, 고통에 감사하라.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