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삼 논설위원
한양대 국제병원은 지난해 4600여 명, 올해는 상반기에만 3700여 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했다. 절반 가까이가 러시아 환자다. 이 병원 김대희 행정지원팀장은 “여성 환자에게 붉은 장미를 홀수로 선물하고, 퇴원할 때는 동대문 러시아 거리에서 전통 케이크를 사와 파티를 열어준다”고 했다. 러시아에선 생일이나 명절에 여성에게 장미꽃을 건넨다. 홀수는 축하, 짝수는 애도를 의미하므로 100송이보다 1송이를 주는 게 경우에 맞다.
‘K메디컬’로 일컬어지는 의료 한류(韓流)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2010년 건강 관련 여행수지가 처음 흑자를 냈고 지난해엔 12만2000여 명의 의료관광객이 다녀가 전년 대비 50% 증가율을 기록했다. 양질의 의료 서비스, 뛰어난 가격경쟁력(한국 100, 미국 338, 일본 149)과 접근성(3시간 비행거리 내 인구 100만 명 이상 도시 61개)에다 다인종·다문화권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고 섬세한 소통 노하우를 쌓은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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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과 여행사가 제휴해 만든 의료관광 상품들은 ‘진료와 여행이 따로 놀아 만족도가 낮다’는 지적에 따라 좀더 정교하게 보완되고 있다. 한 비만클리닉 원장은 “가령 양악수술 환자는 2주 동안 고형식을 못 먹어 활동에 제약이 있는 반면에 지방흡입술을 받은 환자는 많이 돌아다녀야 부기가 잘 빠지고 회복도 빠르다. 환자들의 이런 개별적 상황을 세심하게 고려한 맞춤형 여행상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장의 다양한 노력은 평가할 만하지만 이제 막 가능성을 확인한 K메디컬이 본격 도약하려면 마케팅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긴 안목으로 의료산업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정답이다. 지금도 몇몇 분야는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전반적인 의료기술 수준을 한 차원 더 끌어올리기 위해 우수한 인력을 끌어들이고 연구개발 및 시설 투자를 늘려가야 한다. 탄탄한 실력을 갖추면 ‘입소문 마케팅’은 절로 따라온다.
K메디컬의 앞날을 생각하면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 도입 문제가 의료 양극화 논란 속에 결국 물 건너간 것이 못내 아쉽다. 이를 허용해 민간자본의 과감한 투자를 유치했더라면 의료산업은 물론이고 병리학 생리학 약리학 등 ‘돈이 안 된다’고 외면 받는 기초의학 분야에도 생기가 돌았을 것이다. K메디컬의 ‘판’을 키울 수 있는 호기를 기약 없이 흘려보낸 아쉬움이 크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