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창 판소리 사설집 ‘이순신歌’ 펴낸 소리꾼 김영옥 씨
판소리 ‘이순신가’를 창작한 소리꾼 김영옥 씨는 광화문 이순진 동상 앞에서 “충무공은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는 아들이었다. 사람을 대할 땐 그 사람의 뒤 그림자까지 어루만질 줄 아는 남자였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소리꾼 김영옥 씨(65)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담은 완창 판소리 사설집 ‘이순신가’(SNS출판)를 펴냈다. 충무공의 젊은 시절 방황부터 자기를 내던진 리더십까지, 고통과 슬픔을 이겨낸 삶을 판소리로 되살려냈다.
“충무공의 할아버지가 기묘사화에 연루돼 아버지도 관직에 못 나갔습니다. 충무공은 젊은 시절 생계를 위해 남의 밭에서 일하는 ‘알바생’이었어요. 진로가 막막했던 당시 심경은 ‘글을 익혀 문신될까, 무예 익혀 무장될까, 흙을 벗 삼아 사기장이 땀방울로 욕망을 씻을 건가’라는 시에 잘 나타나 있죠. 그러나 숱한 실패 끝에 서른둘에 무과에 급제합니다. 충무공은 나약한 청춘이 아니라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나간 자립의 아이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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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다섯 바탕 중에 ‘적벽가’가 있습니다. 중국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적벽대전을 그린 노래예요. 우리에게도 자랑스러운 장수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데 왜 200년 동안 적벽가만 불러야 했을까요. ‘이순신가’는 단지 영웅 일대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임진왜란을 이겨낸 민초들의 애잔한 한을 풀어내는 우리의 문화입니다.”
김 씨는 이순신가를 준비하면서 꿈속에서도 충무공을 여러 차례 만났다고 했다. 그는 스물다섯 살에 여수로 시집온 뒤 시부모와 함께 여수 내 충무공 유적지를 돌봐왔다. 김 씨는 “6·25전쟁의 여파로 다 쓰러져가는 충민사(忠愍祠)를 목재업 하시던 시아버지께서 직접 수리해 주시고, 시어머니는 매년 명절이면 충무공과 전라좌수영 소속 장군들의 비석이 있는 진남관에 음식을 준비해 제사를 올리시곤 했다”며 이러한 인연이 판소리 ‘이순신가’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올해는 임진왜란 420주년인 데다 대선의 해인 만큼 더욱 충무공 리더십을 되새겨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충무공은 늘 자신을 버리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며 “요즘 정치인들은 자기부터 거두려고 애쓰다 보니 거짓과 이기심이 난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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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