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유홍준 지음/472쪽·1만8000원·창비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와흘 본향당’. 팽나무에 ‘물색천’과 ‘소지’가 걸려 있다. (아래)유홍준 교수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은 ‘영실’의 진달래 능선. 창비 제공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7권 제주도 편을 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1993년 시작한 제1권 ‘남도답사 일번지’부터 지난해 출간한 제6권 ‘인생도처유상수’까지 국내 인문서 최초로 판매 300만 부를 돌파했다. 눈부시고 이색적인 자연으로 육지인들에게 선망의 여행지인 제주가 인기 기행문과 만났으니 책의 첫 장을 펼칠 땐 살짝 설레기까지 했다.
책은 제주의 문화유산뿐 아니라 역사와 사람, 자연까지 두루 다뤘다. 저자는 전작에서 ‘남도답사 일번지’로 전남 강진과 해남을 꼽았듯이 ‘제주답사 일번지’로는 제주시 조천읍과 구좌읍을 추천했다.
조천읍 와흘리 ‘와흘 본향당(本鄕堂)’ 팽나무에 주렁주렁 걸린 알록달록한 천과 하얀 종이가 이방인의 호기심을 끈다. 제주에는 1만8000 신(神)이 살고 있다는데, 마을마다 이들을 모신 신당(神堂)을 본향당이라고 한다. 제주 여인네들은 본향당의 ‘할망(할머니)’ 신에게 하소연을 하고 마음의 응어리를 푼 뒤 분수껏 ‘카운슬링비’를 내며, 넉넉한 사람들은 할망이 옷을 해 입도록 물색천을 걸어둔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흰 한지인 ‘소지’를 가슴에 대고 소원을 빈 뒤 나뭇가지에 거는 풍습도 있다. 까막눈 할머니들을 위해 생겨난 의식이라는데 그 절실한 마음이 짐작돼 더욱 애틋하다. 본향당은 제주 여인네들이 인생 곳곳의 중요한 사건들을 신에게 신고하는 ‘영혼의 동사무소(주민센터)’라는 말이 와 닿는다.
저자는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한라산 윗세오름에 이르는 등산길인 영실을 주저 없이 지목했다. 오백장군봉, 진달래 능선, 구상나무 자생군락, 그리고 윗세오름으로 이어지는 영실 답사를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교향곡에 비유하면 라르고, 아다지오로 전개되다가 알레그로, 프레스토로 빨라지면서 급기야 마지막에는 ‘꿍꽝’ 하고 사람 심장을 두드리는 것과 같다.”
추사 김정희가 9년간 유배돼 살던 서귀포시 대정읍도 빼놓을 수 없는 답사지다. 대정은 위대한 명작 ‘세한도’를 탄생시킨 곳이자 추사체를 완성시킨 곳으로 알려졌다.
1964년 제주의 젊은 해녀들이 물질 작업장인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오늘날 해녀들은 고무옷을 입지만 1970년대까지는 ‘물옷’이라고 해서 어깨끈이 달린 무명이나 광목 소재의 ‘물소중이’ 위에 ‘물적삼’을 입었다. 사진 속 해녀들은 물소중이만 입고 있다. 제주대 박물관 소장
처참했던 4·3사건의 흔적, 굳센 제주 여인을 상징하는 해녀의 역사, ‘원조’ 돌하르방이 따로 있다는 사실, 그리고 천연기념물 제주마(馬)에 대한 이야기도 펼쳐진다. 저자의 재치 있는 입담과 함께 책으로나마 제주 구석구석을 거닐다보면 제주가 속살을 벗고 내게 다가오는 듯하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제주는 전과 같지 않으리라.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