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가 되기를 거부한 격동기 러 현대문학 산증인
《 올해 세계문학상으로 거듭난 제2회 박경리 문학상 최종 후보에는 현대 러시아 문학의 산증인인 소설가 블라디미르 마카닌(75)도 포함됐다. 그는 1970년대 브레즈네프 치하의 침체기부터 고르바초프의 개혁기를 거쳐 소련 체제의 붕괴, 그리고 오늘의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40년 넘게 격동의 러시아 역사를 문학에 담아온 인물이다. 높은 명성을 얻었지만 끝까지 언더그라운드 작가로 남기를 원한 소탈한 작가이기도 하다. 김현태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 교수의 도움을 받아 그를 소개한다. 》
러시아 현대문학의 산증인인 블라디미르 마카닌. 그는 소련의 침체기부터 고르바초프의 개혁기, 그리고 체제 붕괴 시기까지 격동의 러시아 현대사를 소설에 담아 왔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1965년 장편 ‘직선’으로 등단한 마카닌의 문학 여정은 이와 같은 러시아 현대사의 격변기와 궤적을 함께한다. 브레즈네프 치하부터 현재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오래 작품 활동을 하며 대표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이는 마카닌이 거의 유일하다.
1937년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위치한 오르스크라는 작은 도시에서 출생한 그는 어린 시절 체스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최고의 두뇌들이 모이던 모스크바국립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포병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다가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수학을 전공한 한국계 러시아인 이리나 김과 결혼한 사실도 이채롭다.
마카닌은 비주류의 삶을 살았지만 ‘러시아 부커상’(1993년) ‘러시아 국가상’(1999년), ‘우리 시대의 명저 상’(2008년) 등을 수상했고, 다수의 작품이 유럽과 미국에서 출간되며 유명해졌다. 하지만 마카닌은 최근 이런 말을 남겼다. “진정한 언더그라운드는 주류의 일부가 될 수 없으며, 교회 근처에서 적선을 구하는 바보 예언자와 같은 존재인 작가는 결코 사제직에 오를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작가들이 좁은 길을 따라 힘겹게 높은 산에 오르던 러시아 문학의 20세기 후반이 과거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는 산의 정상에서 아래로 난 길이 점점 넓어져 도대체 길의 경계가 어딘지 불분명한 세상이 되었다. 마카닌은 길의 흔적이 희미해진 평원에서 러시아 정신세계의 지형 탐사를 꿈꾸며, 지하 깊숙이 자신의 통로를 파 내려가는 언더그라운드 작가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