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극인 도쿄 특파원
한류(韓流) 메카로 유명한 도쿄(東京) 신오쿠보(新大久保) 거리에는 한동안 주말마다 극우 시위대가 몰려다니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요즘도 주중에는 확성기를 부착한 차량이 소음 공세를 퍼붓고 있다. 이 때문에 한류 팬이 발길을 돌리면서 이곳 한국 식당들의 매출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 교민은 “시위대가 종업원들에게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는 누구 땅’이냐며 시비를 걸어 올 때는 사고라도 날까 봐 가슴을 졸인다”고 전했다.
일본 잡지는 ‘한국을 망하게 하는 법’ 시리즈와 특집을 쏟아 내고 있다. 선정적인 3류 잡지라면 거론도 안 하겠지만 일본 사회에서 평판이 높은 시사 잡지들 얘기다. 필진도 대학교수부터 경제전문가, 저널리스트까지 다양하다. 이 중 일본인으로 귀화한 한국인 교수와 한국을 사랑했다고 주장하는 일본인 교수의 이름도 보인다.
일본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대한 배려는 끝났다”느니,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무례하다”는 막말을 쏟아 내더니 이제는 여야 가릴 것 없이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까지 부정하고 나섰다. 헌법을 개정해 재무장하겠다는 극우 정치인들은 ‘영토 문제 적임자’라는 이유로 차기 총리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일본이 영토 문제로 중국에 당하고 러시아에 치인 화풀이를 한국에 하고 있다는 일회성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된다. 한일 관계의 토대를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본 내에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먼저 일본 정치권의 세대교체다.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40, 50대 전후세대가 정치 전면에 등장하면서 일본의 과거사 족쇄를 벗어던지려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등 제국주의 일본을 주도했던 세력의 후손은 일본은 단지 미국과의 전쟁에서 졌을 뿐 한국에 부채가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런 기류는 안팎으로 피해의식이 커지는 국민의 불안감과 결합해 한일 관계를 새로운 긴장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의 약진도 한국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바꾸는 요인 중 하나다. 일본 기업들이 전자 등 일부 산업에서 죽을 쑤면서 한국을 인정하는 한편으로 반감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기업인은 “한국의 키가 부쩍 자라 세계 시장이라는 만원 지하철에서 일본과 자꾸 어깨가 부딪치면서 감정이 상하는 일이 늘고 있는 셈”이라고 비유했다.
배극인 도쿄 특파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