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왜 수학을 싫어할까?’ 많은 부모가 이 질문을 되풀이하며 산다. 의외로 정답은 가까운 곳에 있다. 학부모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 보면 된다.
○ 수학 디바이드
학부모들 중 학창시절 수학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진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수학이라고 하면 ‘어렵다’, ‘답답하다’, ‘복잡하다’, 심지어 ‘무섭다’는 이미지까지 떠올린다. 그 이유로 대부분이 “정답만 요구당하고, 틀리면 혼나기만 했기 때문에 수학과 멀어졌다”고 한다. “도대체 왜 내가 그런 걸 배워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는 대답도 상당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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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곧 ‘수학 디바이드’로 연결된다. 한국은 소수의 수학 천재와 다수의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로 구성된 나라다.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온 한국의 수학 영재들은 지난 7월 제53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당당히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나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의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 변화 국제비교연구(TIMSS)’에서도 학업성적은 매번 최상위권이다. 그런데 수학에 대한 ‘흥미도’나 ‘자신감’은 PISA나 TIMSS 모두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아이들에게 수학의 매력을 알려줄 방법은 뭘까. 어쩔 수 없이 공부하는 아이들에겐 흥미를 붙여주고, 수학을 못하는 아이들에겐 최소한 ‘공포증’만이라도 없애줄 묘안 말이다. 수학교육 전문가들이 내놓는 해법은 딱 한 가지다. 문제를 풀었을 때의 성취감과 희열을 자주 느끼도록 도우라는 것이다. 그 역할을 바로 부모가 해야 한다.
○ 우선 ‘왜?’라는 질문에 답하라
부모들이 착각하는 게 하나 있다. 학원을 보내면 자녀의 수학점수가 올라가고, 점수가 오르면 당연히 수학을 좋아하게 될 거라는 대책 없는 ‘낙관론’이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삐에로 교수’로 유명한 배종수 서울교대 교수는 “수학에서는 ‘왜?’가 가장 중요하다. 부모나 교사가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결국은 주입식 교육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수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 ‘왜 곱셈이나 나눗셈을 덧셈이나 뺄셈보다 먼저 계산하는지’ 등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으면 아이가 수학에 정을 붙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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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모와 아이가 ‘왜’라는 질문과 답을 주고받다 보면 인성과 창의성도 자란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 의한 수학교과서에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을 곳곳에 넣은 이유이기도 하다.
신현성 강원대 교수도 “수학을 학생들이 왜 배워야 하는지 정확히 알려줘야 한다”며 “초등학교 수학을 잘해야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잘할 수 있다는 무의미한 설명보다는 실생활에서도 잘 응용할 수 있다는 증거들을 제시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 ‘정답’이 아닌 ‘계기’를 만들라
수학은 수학답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도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수학은 ‘정답’이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한 단계 한 단계 과정을 밟아 나가는 것이다. 박만구 서울교대 교수는 “처음에 문제가 잘 안 풀리면 누구나 어려워하지만, 정답이 나왔을 때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모가 선뜻 답을 내주면 이는 곧 자녀에게서 ‘해결의 기쁨’을 누릴 기회마저 뺏는 것과 다름없다. 박 교수는 그래서 “아이들에게 문제를 푸는 과정을 스스로 설명하게끔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초등학생의 경우는 어려워하는 부분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힌트를 주거나 보조 질문을 하는 것도 유용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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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에게 물어보면 ‘열심히 하는 아이들’보다 ‘즐기는 아이들’이 더 성적이 좋을 거라고 대답은 잘합니다. 그런데 실제 집에 가면 아이들이 즐기도록 돕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하길 요구하죠. 이것부터 바꿔야 합니다.”
문권배 상명대 교수는 좀 더 포괄적인 역할론을 제시한다. 단편적인 지식이나 수학적 기술보다는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수학문제는 세상을 보는 창들을 하나하나 테스트하는 것이다. 부모는 단편적인 것들보다는 그런 수학을 배우는 의미나 목표의식을 키워주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도 당신은 “이 공식 외워”, “오늘 이 문제 다 풀어”라는 따위의 지시를 내리고 있는가. 명심하자. 부모가 바뀌어야 아이도 바뀐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