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형준 경제부 기자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파생상품인 금리스와프에 가입돼 청산비용만 1800만 원가량을 물게 된 자영업자 오모 씨가 제기한 민원에 금융감독원이 내민 답변서의 한 대목이다. 지난해 10월 A은행 직원을 믿고 10억 원을 대출받은 오 씨는 금리가 싼 B은행으로 대출을 옮기려 하자 중도해지 수수료를 포함해 3000만 원이 넘는 돈을 물어내라는 요구를 받았다.
▶본보 25일자 A16면 10억 대출 중도상환… 헉, 수수료가 3297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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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이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A은행 못지않게 금감원의 민원처리 방식 역시 납득하기 힘들다. 금감원의 답변서는 은행이 형식적 절차를 이행했으니 당사자끼리 잘 합의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A은행 본점에서 오 씨에게 담당자로부터 파생상품의 손실 가능성에 대해 설명을 들었는지 전화로 확인을 한 만큼 오 씨가 파생상품 가입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고 금감원은 판단한 셈이다.
이러한 판단은 금융회사 일선 창구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 ‘여기하고 여기, 형광펜으로 줄 친 곳에 서명하세요’라고 서류 처리를 하는 실태를 금감원만 모르는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오 씨가 민원을 제기하자 A은행이 비용 800여만 원을 깎아준 것도 ‘도둑이 제 발 저린’ 식의 양보(?)는 아니었을까.
오 씨 사례를 보면 고객들은 아무리 간단한 금융상품이라도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으면 뜻밖의 손해를 봤을 때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금감원이 5월 금융소비자보호처를 왜 새로 설치했는지 궁금하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