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혐의’ 리비아 억류된 직원들 협상 통해 구출
“건물 안 꼬불꼬불한 복도를 지나 우리를 안내하던 민병대원이 갑자기 ‘구금된 직원들이 있는 곳에는 소장만 들어갈 수 있다’며 수행원과 기자들을 모두 막았습니다. 그 짧은 순간 ‘이제 나까지 구금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직원들의 석방을 위해 대담하게 베팅했습니다.”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71)이 지난달 1일 오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차를 타고 서남쪽으로 2시간 정도 가야 하는 진탄 지역 군 시설에서 겪은 긴장된 순간이다. 그는 이날 새벽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이탈리아 로마에 오자마자 이탈리아 공군기를 타고 비밀리에 트리폴리로 갔다. 호주 출신 멀린다 테일러 변호사 등 ICC 직원 4명이 반혁명 스파이 혐의로 리비아 당국에 체포된 지 25일만이다. 테일러 변호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요청으로 ICC 재판을 받게 될 무아마르 카다피 전 원수의 아들 사이프 이슬람 등의 변호인 자격으로 리비아를 방문했다.
송 소장은 리비아 주재 주요 ICC 회원국 대사관들이 시시각각 보내준 정보를 토대로 여러 날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또 “나만이 책임 있게 사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리비아 관리들을 숱하게 접촉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래서 “소장이 직접 리비아에 가서 협상하는 길밖에 없다”는 의견을 듣고는 망설이지 않았다. 직원들의 구금 사실이 통보된 6월 7일 이후 ICC에 위기대처위원회를 만들고 주말도 없이 2시간마다 회의를 여는 등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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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소장은 지난주 서울에 왔다. ICC 근무 10년 만에 처음 얻은 휴가다. 그는 “리비아에서 난생 처음 그런 일을 겪었더니 이번엔 정말 쉬고 싶었다. 처음으로 내가 먼저 휴가를 쓰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12일 헤이그로 돌아간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