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사회부 차장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하지 않았음에도 안 원장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은 건 현실 정치가 한심한 탓이다. 안 원장의 지지율은 스스로 진단했듯 정치 불신을 먹고 자랐다. 정치가 개판일수록 그는 뜬다. 안 원장을 성인처럼 보이게 만든 건 부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여당과, 무능하고 뻔뻔한 야당이라는 걸 그들만 모른다.
정치인의 오만은 불치병이다. 여야의 특권 포기 약속은 이미 오래전 꿈 이야기 아닌가 싶다. 새누리당이 다짐한 ‘신뢰와 약속의 정치’는 당내 집단논리를 극복하려면 갈 길이 멀다. 공천헌금 파동은 박근혜 의원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남의 눈의 티끌은 크게 보고 제 눈의 들보는 못 보면서 ‘방탄 국회’를 열겠다는 민주통합당은 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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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인정하듯 안 원장은 아직 정치적으로 불완전한 상품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비전은 있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지는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다. 소명을 기다리는 ‘정치경계인 안철수’는 확신과 불안이 뒤섞인 카오스에 있는 듯이 보인다.
독촉이 부담스러웠던지 그는 얼마 전 책을 냈다. 평소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고 했지만 공약집 성격의 책 내용은 덜 다듬어진 듯했다. 대기업에 대해선 잘못에 초점을 뒀고, 천안함 사건에 대해선 남북한 양비론을 폈다. 정치는 훈수 두는 것처럼 쉽지 않다. 문제를 안다고, 예습 좀 했다고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존경 받는 기업인 출신으로 건강한 사회혁신을 꿈꾸는 그를 대안으로 여겼던 사람들에겐 실망스러울 수 있는 내용이 아닌가 싶다. 그의 책을 두고 ‘신문 사설을 베낀 수준’이라는 평이 나온 것도 흘려들어선 안 될 지적이다. 국민은 정말 그가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인지 알고 싶어 한다.
안 원장은 자신만의 참한 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가식의 유혹에 빠지면 쫄딱 망한다. 이명박 대통령 측근이 줄줄이 구속되는데도 민주당의 지지율이 안 오르는 이유를 새겨야 한다. 준비가 부족하다고 공부만 할 게 아니라 솔직히 고백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러면 좋은 사람이 따르고 국민도 돕는다. 다른 정치인은 몰라도 안 원장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다.
물론 안 원장이 기존 정치인처럼 거짓을 꾀한다면 유권자도 눈감아 줘선 안 된다. 현실 정치가 추하다고 무조건 메시아로 대접해선 곤란하다. 혹독한 검증 바람은 불가피하다. 그래야 구름이 걷히고 그가 진짜 성인(聖人)인지, 아니면 그냥 성인(成人)인지 드러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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