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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박정훈]‘성인’ 안철수

입력 | 2012-08-08 03:00:00


박정훈 사회부 차장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 캠프의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이 최근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겨냥해 “성인(聖人)인 척하는 게 곧 판명날 것”이라고 했다. 안 원장이 SK 최태원 회장 구명운동을 한 것을 꼬집은 말이다. ‘안철수 멘토’로 불렸던 사람의 말치곤 품위가 떨어지지만 정치인 중엔 공감하는 이가 적지 않다. 안 원장이 구름 위에서 정치한다는 게 그들 생각이다.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하지 않았음에도 안 원장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은 건 현실 정치가 한심한 탓이다. 안 원장의 지지율은 스스로 진단했듯 정치 불신을 먹고 자랐다. 정치가 개판일수록 그는 뜬다. 안 원장을 성인처럼 보이게 만든 건 부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여당과, 무능하고 뻔뻔한 야당이라는 걸 그들만 모른다.

정치인의 오만은 불치병이다. 여야의 특권 포기 약속은 이미 오래전 꿈 이야기 아닌가 싶다. 새누리당이 다짐한 ‘신뢰와 약속의 정치’는 당내 집단논리를 극복하려면 갈 길이 멀다. 공천헌금 파동은 박근혜 의원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남의 눈의 티끌은 크게 보고 제 눈의 들보는 못 보면서 ‘방탄 국회’를 열겠다는 민주통합당은 또 어떤가.

지금 국민은 대안에 목말라 있다. 안 원장은 정치공학에 함몰된 기존 정치인과 다른 면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가 과거 행적과 궤를 달리하는 말을 해도, 국정을 맡을 만한 능력이 있는지 확실히 보여 주지 않았어도 그렇게 본다.

스스로 인정하듯 안 원장은 아직 정치적으로 불완전한 상품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비전은 있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지는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다. 소명을 기다리는 ‘정치경계인 안철수’는 확신과 불안이 뒤섞인 카오스에 있는 듯이 보인다.

독촉이 부담스러웠던지 그는 얼마 전 책을 냈다. 평소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고 했지만 공약집 성격의 책 내용은 덜 다듬어진 듯했다. 대기업에 대해선 잘못에 초점을 뒀고, 천안함 사건에 대해선 남북한 양비론을 폈다. 정치는 훈수 두는 것처럼 쉽지 않다. 문제를 안다고, 예습 좀 했다고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존경 받는 기업인 출신으로 건강한 사회혁신을 꿈꾸는 그를 대안으로 여겼던 사람들에겐 실망스러울 수 있는 내용이 아닌가 싶다. 그의 책을 두고 ‘신문 사설을 베낀 수준’이라는 평이 나온 것도 흘려들어선 안 될 지적이다. 국민은 정말 그가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인지 알고 싶어 한다.

안 원장은 자신만의 참한 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가식의 유혹에 빠지면 쫄딱 망한다. 이명박 대통령 측근이 줄줄이 구속되는데도 민주당의 지지율이 안 오르는 이유를 새겨야 한다. 준비가 부족하다고 공부만 할 게 아니라 솔직히 고백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러면 좋은 사람이 따르고 국민도 돕는다. 다른 정치인은 몰라도 안 원장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다.

물론 안 원장이 기존 정치인처럼 거짓을 꾀한다면 유권자도 눈감아 줘선 안 된다. 현실 정치가 추하다고 무조건 메시아로 대접해선 곤란하다. 혹독한 검증 바람은 불가피하다. 그래야 구름이 걷히고 그가 진짜 성인(聖人)인지, 아니면 그냥 성인(成人)인지 드러나지 않겠나.

박정훈 사회부 차장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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