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까, 세계유산 룽먼석굴에 석굴 하나 더한 신라인은…
중국 허난 성 뤄양 시의 룽먼석굴(세계문화유산)에 신라인이 조성한 동굴 ‘신라상감’을 6월 26일 찾은 박현규 순천향대 교수는 “동굴 입구 위쪽에 새겨진 ‘新羅像龕’ 네 글자가 1000년이 넘는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고 한중 교류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며 “앞으로의 한중 교류도 상호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이처럼 굳건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뤄양=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1] 중국 당 태종의 무덤 소릉에서 발견된 신라 진덕여왕 석상의 하반신. [2] 건릉 주변 장회태자묘의 벽에 그려져 있던 ‘예빈도’ 진품.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신라 사신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산시성박물관에 있다. [3] 건릉에 세워져 있는 61국인 석상 중 한인 석상.
○ 현장법사-원측 부도탑 한곳에
석굴 입구의 위쪽에는 ‘新羅像龕’이라고 음각된 글씨가 희미하게 보였다. 동굴 입구의 높이와 폭은 각각 1.2m 내외, 깊이는 2m가량 돼 보였다. 석굴 안 세 개 벽면에는 불상이 새겨진 흔적만 남아 있었다. 입구 앞에 설치한 중국어 안내문에는 ‘제484호 굴로 신라인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석굴 안에는 현재 불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신라상감은 여느 석굴과 마찬가지로 승려들이 불법을 수행(修行)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서울에서 약 1400km 떨어진 이곳에 신라상감을 조성한 사람은 누구일까. 가장 유력하게 꼽히는 인물은 신라 승려 원측(圓測·613∼696)이다. 신라의 왕손으로 3세 때 출가를 하고 15세에 당나라로 건너가 장안과 낙양에 머물면서 여러 법사로부터 불법(佛法)을 배웠다. 소설 ‘서유기(西遊記)’의 주인공 삼장법사의 실제 모델인 현장법사가 천축(현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번역하고 종합해 유식사상(唯識思想·마음 외에는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으며, 마음에 의하여 모든 것이 창조된다는 사상)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당나라뿐만 아니라 티베트에까지 이름을 떨쳤다. 그가 지은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는 티베트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원측의 부도탑은 시안(西安) 시 창안(長安) 구 싱자오(興敎)사에 현장법사의 부도탑과 함께 세워져 있다.
중국어와 산스크리트어 등 6개 언어에 능통했다고 알려진 원측은 당 측천무후의 요청에 따라 인도 불경의 번역 사업 책임자를 맡을 정도로 당에서 유명했다. 신라 신문(神文)왕이 여러 차례 원측의 귀국을 요청했지만 측천무후가 이를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박현규 순천향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룽먼석굴의 많은 굴이 당나라 때 생겼다는 점, 측천무후의 요청으로 역경 사업을 벌일 정도로 원측의 이름이 높았다는 점, 특히 그가 여든을 넘겨 입적했을 때 그가 다비(茶毘)된 장소가 룽먼석굴 관광지 안에 있는 향산사의 북쪽 계곡이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신라상감을 조성한 인물은 원측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시안 시 창안 구 싱자오사에 있는 원측 좌상.
○ 61국 석상 중 1개는 韓人 석상
박 교수는 산시(陝西) 성 시안(西安)에 있는 당 고종의 능인 건릉(乾陵)에 세워져 있는 61국인 석상 중 1개가 한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2007년 밝혔다. 2002∼2003년에는 산시(陝西)성고고연구소와 소릉박물관 발굴조사팀이 당 태종의 능인 소릉 북사마문 일대에서 신라 진덕여왕의 이름이 들어 있는 좌대 파편을 발굴했다. 1982년에 하반신만 발견됐던 이 좌대의 석상이 진덕여왕임이 확실해진 것이다. 건릉에 속한 묘 중 하나인 장회태자묘(章懷太子墓) 벽화 중 ‘예빈도(禮賓圖)’에도 신라 사신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그려져 있다.
61국인 석상 중 신라인 상은 건릉으로 가는 길의 동쪽에 세워져 있다. 61국인 석상은 당시 당나라에 오가던 사신들의 모습을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동쪽에 29기, 서쪽에 32기가 세워져 있다. 현재 머리 부분은 모두 훼손되고 없는 상태다.
이 중 동쪽 석상군의 마지막 줄에 홀로 세워져 있는 한인 석상은 왼손에 한민족이 특히 잘 다루는 활을 들고 있고, 삼국시대 신라인들의 옷차림에서 볼 수 있는 3벌 복장을 갖추고 있다. 3벌 복장은 위층, 중간층, 아래층 등 3겹으로 옷을 입는 방식으로 현장에서 본 신라인 석상은 다른 석상들과 옷의 층위가 뚜렷했다. 이런 3벌 복장은 소릉 주변에서 발견된 진덕여왕의 하반신에도 또렷이 남아 있고, 예빈도의 신라 사신도 같은 모양의 옷을 입고 있다. 학계에서는 예빈도의 사신이 고구려인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3벌 복식이 신라만이 아닌 삼국시대의 특징이라는 주장도 있어 정확한 고증을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어 박 교수는 “한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시안과 뤄양의 대표적인 관광지에도 한국과 관련된 문화유산이 많다는 사실이 중국 학계의 발굴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며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중국 학계뿐만 아니라 국내의 여러 전공 학자들의 협업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