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국무회의에서 비공개로 처리한 이유에 대해 “일본이 자국에서 처리를 마친 뒤 같이 공개하자며 보안을 요청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아무리 비공개를 요청했더라도 일본도 처리하기 전에 서둘러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문제점은 여전히 남는다.
○ 정부 “이번에 안 하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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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서명 예정일 하루 전인 이날 오전 여론의 동향을 살피며 내부회의를 거듭했다. 국무회의에서 협정안을 비공개 처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여론의 비판이 고조되는 것에 당황하면서도 국가 간의 약속을 깨기 어렵고, 이번 시기를 놓치면 협정을 체결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는 판단에 따라 결국 강행 방침을 정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절차상 문제는 인정하지만 체결의 필요성이나 의미에는 공감하는 의견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과 참여연대, 민노총 등 48개 단체는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협정 체결 중단을 촉구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손학규 상임고문 등 야당 대선주자는 물론이고 여당 대선주자인 정몽준 의원과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도 비난 대열에 가세했다. 정 의원은 “충격적이고 실망스럽다. 시기와 절차에 문제가 있는 협정을 가능하면 취소하고 김황식 총리가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가 뼛속까지 친미로 시작해 뼛속까지 친일로 마무리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 야당 “국회 동의 거쳐야”
야당은 협정 체결 전에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안위에 관한 중대한 국가 간 협정인 만큼 헌법 제60조에 따라 국회 동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 제60조는 국회의 체결·비준 동의가 필요한 사항으로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을 포함하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정부가 협정 주체를 국방부에서 외교부로 바꾸고 협정 명칭에서 ‘군사’를 뺀 것은 안전보장에 관한 것임을 은폐하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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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국무회의에서 협정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외교부, 국방부 고위 간부들이 야당 의원들을 만나 6월 안에 이 사안을 처리하겠다고 미리 알렸다”며 “이후에도 계속 국회에서 논의하자는 야당의 요구는 사안을 정치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 “왜 그렇게 서둘러서?” 책임 공방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자 외교부 내에서는 “국방부가 추진했던 일을 외교부가 뒤늦게 떠안은 게 문제였다”는 자책이 나왔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5월 말 일본행이 무산된 뒤 외교안보장관회의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며 김성환 외교부 장관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이날 “협정에 국방 관련 요소가 많아 내용(협상)은 국방부가 주도했지만 실제 협정을 맺는 절차는 마지막에 외교부가 하는 것”이라고 외교부에 책임을 미뤘다.
또 국방부는 이번 협정과 함께 추진하려고 했던 상호군수지원협정(ACSA)에 대해 “한일관계의 특수성을 모두 고려해 다음 단계에 가도 되겠다는 판단이 설 때까지는 스톱(stop)”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양국이 추진해온 ACSA는 해외에서 평화유지활동(PKO)을 하거나 해적퇴치, 재난구조 등을 할 때 양국이 필요한 물자와 장비를 상호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일본 자위대가 한국 땅에 들어오는 결과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에 “그런 내용은 전혀 담겨 있지 않다”고 설명했지만 여론의 불안감을 불식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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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