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항/안도현 지음/112쪽·8000원·문학동네
‘바다의 폭이 얼마나 되나 재보려고 수평선은 뒷등에 등대 같은 연필을 꽂고 수십억 년 전부터 팽팽하다//사랑이여/나하고 너 사이 허공의 폭을/자로 재기만 할 것인가’(‘폭’ 전문)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처럼 사랑은 드넓고 망망하다. 바다는 등대(연필)라도 있지만 사랑은 무엇으로 잴까. 여전히 달콤하고, 읽을수록 짙은 향기가 나는 시어들이 보석처럼 책장 속에 숨어있다. 그것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익숙했던 것을 달리 보는 ‘안경’과도 같다. 전북 전주에 있는 시인은 평범한 텃밭에서 삶을 보는 색다른 시선을 모색한다. 배추 잎을 파먹은 애벌레가 추후 나비가 돼 날아가는 공간을 배추밭의 확장 공간(‘재테크’)으로 여기거나 둥굴레가 싹을 틔운 것이 새싹의 힘이 아니라 땅이 제 거죽을 열어줘서 가능했다(‘비켜준다는 것’)는 것이다. 작은 텃밭의 ‘소출’은 시집을 풍성하게 만든다.
시인은 “말과 문체를 갱신하겠다”며 ‘예천’을 비롯해 몇몇 시들을 사투리나 산문체로 쓰기도 했다. 시집을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서정시는 여전히 깊고 맑다. 참여시는 새롭다. 문체의 변화는 글쎄….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