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국제부
형제단은 3월 총선에서 다수당(47%)이 되자 정국의 이슬람화를 우려하는 국민여론을 의식해 대선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하다 한 달 만에 뒤집었다. 군부와의 갈등이 결정적이었다.
카이로의 한 정통한 소식통은 2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총선 직후만 해도 형제단이 내치(內治)를 전담하는 내각을, 군부가 외교 국방을 전담하는 대통령을 맡는 식으로 일종의 밀약이 있었던 것으로 관측됐는데 내각 구성권을 둘러싸고 군부와 형제단의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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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은 ‘군부의 과거 청산 문제’를 둘러싸고도 갈등을 빚어왔다. 방위산업을 포함해 여행 호텔 항공운송 신발 생수 산업까지 운영해 국내총생산의 15%를 차지하는 군부는 6월 국민투표에 부쳐질 신헌법에 △예산 독자행사 △군이 운영하는 기업체에 대한 통제 불허 △국방 관련 모든 결정권 행사 △과도정부 기간 중 범한 과오(민간 시위대 살상, 군법재판소에서 민간인 재판을 한 것 등)에 대해 면책권을 명시할 것 등을 요구했지만 형제단은 이를 약속하지 않았다.
형제단이 3월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 데 이어 대선 1차 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하자 ‘이집트의 이슬람화가 우려된다’는 분석이 많지만 현지에선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도 나온다. 1927년 만들어진 형제단은 급속한 서구 사상 전파로 아랍 사회가 붕괴되고 있다며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을 해온 시민단체. 빈민구제 활동을 기반으로 정부 비판을 서슴지 않아 지금까지 무려 10만여 명이 투옥됐다. 제도권 입성 첫해에 주류 정치세력으로 급부상한 것은 그만큼 오랜 시간 서민층에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형제단은 경제활동에서 이자를 인정하지 않고 공기업 매각에 반대하며 반미 성향을 갖는 등 폐쇄경제를 표방하고 있다. 카이로에서 만난 자유정의당(형제단이 만든 정당) 전략위원장 마무드 무스타파 사드 씨(39)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이슬람 원칙대로 나라를 운영하면 부패와 불공정은 사라진다. 이슬람 원칙이란 사람 안에 있는 ‘양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치”라고 했다. 한편 지식인들은 이슬람화를 크게 걱정하는 분위기다. 최대 일간지(130만 부 발행) 알아람의 가말 자이다 편집국장은 기자에게 “이집트는 19세기부터 한 번도 종교적인 정부 밑에 있지 않았다. 우리는 이슬람을 믿기도 하지만 술 먹는 사람도 있고 자유로운 생각을 좋아한다. 더구나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라고 우려했다. 이슬람이냐, 군부의 재집권이냐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놓인 현재 이집트 정국은 민주주의 도정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지를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허문명 국제부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