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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희의 ‘광고 TALK’]역사로 남는 축하광고

입력 | 2012-05-25 03:00:00


김병희 교수 제공

이런저런 축하광고들이 늘고 있다. 광고 물량이 늘어나는 일은 반갑지만 메시지 내용은 반갑지 않다. 광고란 어디까지나 상품 판매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특히, 국가적 대사를 기념하는 축하광고에서는 광고가 역사적 기록으로 남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좀 더 섬세한 고민 끝에 카피를 써야 한다는 뜻.

화평당(和平堂)대약방 광고(매일신보 1911년 10월 1일)는 ‘축 총독부 시정(始政) 1주년 기념’과 ‘팔보단(八寶丹) 발견인 이응선’이라는 두 개의 헤드라인을 썼다. 이어서 ‘현금(現今·요즘) 추기(秋氣·가을 날씨)가 점랭(漸冷·점점 차가워짐)한데 유래(由來)의 서독(暑毒·더위먹음)을 능소(能銷·없앰)하며 장습(장濕·배탈 설사 같은 풍토병)을 전제(全除·제거)하고 여역((려,여)疫·전염성 열병)을 예방하며 복위(腹胃·배 속)ㅱ 강건(康健)하고 심기를 청쾌(淸快·맑게)하야 위생의(에) 제일 필요토록 특제 발매함’이라는 보디카피를 덧붙였다.

이응선(1879∼1927)의 화평당은 이경봉이 운영하던 제생당의 비즈니스 맞수로서 구한말 의약업계 최대의 광고주였다. 그는 “광고는 가급적 기이한 의장(意匠·디자인)과 평이한 문자를 사용해야 한다”(매일신보 1916년 3월 5일)며, 일찍부터 광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제복 입고 의자에 앉은 자기 모습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그려 지면의 중앙에 배치하고 ‘팔보단 본가(本家)ㅱ 경성 종로 화평당대약방 주인 이응선’이라 소개함으로써, 스스럼없이 광고 모델이 되었다. 광고 신봉자답게 약의 효능 효과를 나열한 족자를 들고 광고 속 광고(ad in ad)까지 하고 있다.

그는 왜 이런 축하광고를 했을까? 지금도 국가적인 대사가 있을 때는 축하광고를 하는 관행이 있다. 필요해서 하는 광고도 있겠지만, 보이지 않는 손의 기획에 따르거나 권력에 아부하며 존재감을 알리는 수단으로 하는 광고도 많다. 화평당 말고도 여러 개인이나 상점에서는 1911년 10월 들어 신문들에 조선총독부 1주년을 기념하는 광고를 많이 했다.

이제 와서 그런 광고 행위를 탓해 뭐하겠나? 다만 정통적인 역사 사료에서 누락된 증거들도 광고에 세세히 남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이래저래 미치도록 고민스럽게 하는 것이 광고(狂苦)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