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체가 붕 뜨자, 인간은 창공의 주인이 되었다
라이트 형제의 고향은 오하이오 주 데이턴이란 곳이었다. 네 살 많은 형 윌버는 조용하지만 열정적이었고 책을 즐겨 읽던 몽상가였다. 그에 반해 동생 오빌은 말 잘하는 멋쟁이로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둘은 만들기를 무척 좋아해 고교시절 인쇄기를 직접 만들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이후 자전거 관련 회사를 차려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던 중 글라이더 개발의 선구자였던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이 시험비행 중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항공기 개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당시 항공기 발명이 더뎠던 것은 위험성 때문이었다. 하늘을 나는 미완성 기계를 누군가가 직접 타고 운전해야 하는 위험 말이다. 하지만 이 형제는 치밀한 계획으로 위험을 상쇄하기로 했다. 그들은 일단 기상청을 통해 전국에서 바람이 가장 세면서도 일정하게 부는 곳을 조사했다. 그곳이 바로 아우터뱅크스였다. 이곳은 노스캐롤라이나 동부 해안선 160km를 띠 모양으로 막아선, 기다란 섬의 군락이었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거친 바람이 만들어낸 모래언덕들로 이루어진 이곳 섬에는 인적이 드물었고 나무나 관목이 별로 없었다. 모래만 가득한 지형은 부드럽고 안전한 착륙에 이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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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12월 17일 아침, 드디어 역사적인 날이 밝았다. 동전으로 정한 순서에 따라 동생 오빌이 그들의 동력비행기인 ‘플라이어 1호’에 먼저 올랐다. 형제는 기체에 시동을 걸기 전 몇 마디 말을 주고받고 악수를 했다. 한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은 서로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처럼 작별 인사하는 가족 같았다고 한다. 드디어 오전 10시 35분, 레일을 따라 비행기가 천천히 앞으로 미끄러져 움직였다. 그리고 옆에서 따라 달리던 형 윌버가 승강타를 잡아당기자 이내 기체가 떠올랐다. 인류의 첫 비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기보다 무거운 기계(이미 19세기에 공기보다 가벼운 비행기계인 기구가 발명돼 있었다)에 사람을 태우고 나는 세계 최초의 동력 비행이 성공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역사적인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일반인은 무관심했고 언론이 그들을 불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하는 영광은 형제를 제외하고는 단 5명만 누릴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 그 유명한 킬데빌힐스에 올랐다. 높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구릉이 거의 없는 아우터뱅크스의 지리적 특징 때문에 주위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1층이 비어 있는 이 지역 특유의 집들 너머로 높은 파도의 대서양이 넘실대는 장관이 보였다.
언덕에 오르기 전부터 쉬지 않고 불어대는 바람은 그칠 기미가 없었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띄우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왔을 그 바람은 먼 미래에도 똑같이 불고 있으리라. 나도 그 바람 위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바람은 내 손이 날개였다면 몸이 둥실 날아오를 듯한 강렬한 느낌을 전해줬다.
나는 비행기가 떠오르던 그 순간 형제가 느꼈을 설렘을 상상해보며 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멀리 하얀색 여객기 한 대가 비행운을 남기며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비행기는 같은 공간, 같은 바람 속에서, 하지만 훨씬 높은 창공을 유유히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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