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물건들에도 물성… 쓰는 사람 감성까지 보듬어명품 속 장인정신 만날 땐 희열
윤광준 씨가 5년 전에 구입했다는 일본 하리오사의 주전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이 주전자를 디자인한 사람은 물 따르기 편리하고 예쁘게 따를 수 있게 주전자 모양과 주둥이 각도까지 고민했을 것”이라며 “물건을 매개로 만든 사람의 생각을 만나는 게 교감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양=김경제 기자
경기 고양시 일산에 있는 그의 지하 작업실에선 진공관 앰프와 1950년대 탄노이 스피커로 이뤄진 고색창연한 오디오 시스템이 먼저 기자를 맞았다. 윤 씨는 직접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렸다.
“사진가라는 게 돌아다니는 직업이다 보니 작업의 편의와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물건’들이 많아요. 또 원래 잡다한 데 관심이 많다 보니 사용한 물건들을 책으로까지 펴내게 됐죠.”
그가 책에 다룬 물건은 사진 작업에 필요한 물건뿐 아니라 사소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일상 제품까지 폭넓다. 바람막이 재킷, 안경, 벨트, 만년필, 라이터, 면도기, 칼, 손전등, 팬티, 수첩, 등산화, 의자, 돋보기, 엔진오일, 휘발유 버너, 수통 컵, 휴대용 술병, 서류가방, 전기장판, 휴대용 주전자, 한지, 쓰레기통, 손톱깎이, 와인따개, 가위, 벽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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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은 인간 정신이 물건이라는 형태로 바뀐 것”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좋은 물건이란 뭐냐”고 물었다. 그는 다시 필기구 얘기를 꺼냈다.
“일본 연필은 버터처럼 부드럽게 써집니다. 독일 제품은 거슬거슬한 느낌이 납니다. 파버카스텔 사장에게 물었더니 ‘연필의 성질이 원래 그렇다’고 해요. 흑연의 ‘물성’이 부드러움이 아니라 거슬거슬함이란 거죠. 종이를 만났을 때 사각사각하는 감촉, 소리까지 담아내야 좋다는 겁니다.”
그는 세심한 감성을 충족시키는 물건을 찾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간다. 좋은 재킷을 찾기 위해 네팔 카트만두의 시장판을 헤매기도 했다. 그렇게 찾아낸 스위스 마무트사의 재킷도 책에 소개했다.
“물건을 쓰다 보면 만든 사람의 세심한 의도를 깨닫는 지점이 있어요. 마무트 재킷은 사지(死地)에 놓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필요를 충족시킵니다. 그런 지점을 만날 때, 감동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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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 대세인 시대에 아날로그는 여전히 유효할까.
“디지털은 그런 감각을 못 줍니다. 아날로그는 철저한 즉자(卽自)적 세계죠. 직접 접하지 않으면 모르는 세계입니다. 디지털은 결국 아날로그적인 부분까지 충족시키는 ‘디지로그’로 갈 겁니다. 디지털 시대에 한국 기업들은 세계적인 제품을 만들지만 아날로그 시대에는 그런 물건을 못 만들었습니다. 여전히 인간에게 필요한 게 아날로그적인 것이라면,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 부분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고양=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