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젊은 시절 힐러리는 대중적 인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남편 빌의 고향 아칸소 주민들은 힐러리를 외면했다. 두꺼운 안경, 촌스러운 헤어스타일에 자기주장이 강한 힐러리는 남편이 하원의원 선거에 떨어지자 마지못해 안경 대신 콘택트렌즈를 끼고 머리를 금발로 염색하면서 내조에 나섰다.
얼마 전 방글라데시 기자회견에 등장한 화장기 없는 얼굴, 도수 높은 안경, 부스스한 머리의 클린턴 장관 사진을 보면서 젊은 시절 힐러리가 떠올랐다. 미국 대중의 반응은 40여 년 전과 달랐다. 미국인들은 “지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장관”이라며 칭찬과 격려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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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장관이 어떻게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인기 높은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는지는 정치학자들 사이에서도 관심거리다. 비교적 정쟁에서 초월할 수 있는 국무장관이라는 직책 덕분이기도 하고, 개인적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밀고나가는 리더십을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물론 이 같은 리더십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클린턴 장관이 건보개혁 추진 실패,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 대선 포기 등 수십 년의 굴곡진 정치 여정을 겪으면서 터득한 감각 덕분일 것이다.
클린턴 장관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정치권에서 그를 다시 부르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럴 때마다 클린턴 장관은 “정치에 지쳤다.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며 고개를 젓는다.
많은 전문가들은 올해 대선에서 클린턴 장관의 부재를 아쉬워하고 있다. 다음 대선에서는 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다. 미국 정치권의 사상적 대립이 격화되면서 여성의 권리가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클린턴 장관은 여성 문제에서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밝혀왔다.
여성계에서는 보수 진영이 낙태, 피임, 임금 등에서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여성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보수 진영은 여성의 권리 주장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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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여성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힐러리의 정치 컴백은 필연적”이라며 “다시 돌아와 원시 시대적 여성관을 가진 남성들과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그의 컴백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최고의 이슈 메이커인 그가 돌아온다면 미국 정치권이 훨씬 흥미진진해질 것만은 확실하다.
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