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가토/권여선 지음/432쪽·1만2000원·창비
30여 년 전 ‘카타콤’이라 불리던 반지하 서클룸에서 모인 전통연구회 회원들은 은밀히 반독재 투쟁에 나선다. ‘학우여, 총궐기하며 반민주 유신독재를 철폐하자’는 유인물을 만들고 학내 사복 경찰들의 눈을 피해 뿌린다. 잡히면 모진 고문과 고초가 뻔한 일. 겁이 난다는 후배들에게 선배는 강압적으로 외친다. “니 나이 때 전태일 열사는 분신까지 했다.”
세월은 변했다. 전통연구회 회장이었던 박인하는 노련한 국회의원이 됐고, 그 선배를 따르던 조준환은 박 의원의 보좌관이 됐다. 다른 회원들은 저마다 교수, 출판기획사 사장으로 산다. 잊고 지냈던 청춘 시절은 함께 활동하다가 돌연 실종됐던 오정연의 동생이라는 하연이 등장하며 하나하나 복기된다. 오정연은 서클의 ‘퀸’ 같았던 존재. 30여 년을 오가며 인물들의 숨겨진 얘기들이 드러나고, 실종된 오정연의 미스터리가 하나씩 풀리며 작품은 교향곡처럼 거대한 서사로 변한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