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中 관광객 겨냥 특수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인 불가리의 ‘A급 짝퉁’ 시계는 보통 28만 원에 팔려요. 하지만 부자 나라인 일본에서 온 관광객에게는 60만 원까지 불러요. 그래도 다들 사가요. 일본 짝퉁 제품에 비해 한국 제품은 ‘디테일’이 살아있거든요.”
1일 오후 서울 동대문 밀리오레 쇼핑몰 5층에서 만난 상인 A 씨(42·여)가 짝퉁 시계가 한가득 담긴 검은색 가방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그는 “재작년을 기점으로 한국인 손님은 많이 줄어든 반면 외국인 손님이 크게 늘었다”며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관광객 순으로 짝퉁을 많이 사간다”고 했다.
일본 골든위크(4월 28일∼5월 6일)와 중국 노동절(4월 29일∼5월 1일) 덕분에 이달 초까지 15만 명의 ‘관광객 특수’가 예상되면서 동대문 짝퉁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국내에선 제작과 유통이 모두 불법인 짝퉁 제품은 이제까지 주로 이태원 지하 매장에서 은밀하게 거래돼 왔지만 최근 늘어나는 외국인 관광객 수요를 업고 동대문 대형 상가에서도 버젓이 판매되고 있었다.
업주들은 매장 입구에 명품 카탈로그를 걸어놓고 호객꾼을 앞세워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관심을 보이는 손님에겐 카탈로그에서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고르게 한 뒤 매장 인근 창고에 보관해놓은 제품을 가져와 보여주는 방식으로 단속을 피하고 있었다. 손님 끌어오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상인 한 명이 매장 10칸을 한꺼번에 임차하고 호객꾼을 두 명 이상 고용하는 등 대형화하는 조짐도 보였다.
이들이 주로 공략하는 손님은 외국인 관광객. 헬로APM 7층 매장에서 짝퉁 가방과 지갑을 판매하는 상인 B 씨는 “요즘 한국 사람들은 눈이 많이 높아져서 짝퉁을 잘 찾지 않는다”며 “재작년부터 입소문과 인터넷을 보고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이 주요 고객”이라고 설명했다. 상인 C 씨는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는 외국인에게 다가가 카탈로그만 보여주면 금방 지갑을 연다”고 했다.
여행사와 손을 잡고 짝퉁 쇼핑코스를 만든 곳도 있었다. 1일 밤 깃발을 든 관광가이드가 외국인 관광객 4, 5명씩 팀을 짜서 ‘즐거운 쇼핑하라’며 안내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여행사 직원을 가장해 접근한 기자에게 “우리 가게도 쇼핑코스에 꼭 넣어 달라”고 부탁하는 상인도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동대문시장은 ‘짝퉁 쇼핑의 메카’로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 인도 뭄바이에서 온 미그틸리 씨(35·여)는 “지난주 한국에 오기 전 인터넷 구글 검색을 해보니 동대문 주변에서 짝퉁 제품을 많이 판다고 소개돼 있었다”고 했다. 중국인 마오진옌(毛錦燕·27·여) 씨도 “한국 동대문 상가에서 짝퉁 옷과 가방을 판다는 것은 중국인 관광객 대부분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