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삼 논설위원
노키아는 휴대전화 생산량의 약 40%를 마산자유무역지역에 있는 한국 공장에서, 나머지 대부분은 중국과 인도에서 만든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쿠퍼티노의 애플 본사는 거대한 디자인센터다. 생산은 17개국 협력업체가 맡는다. 아이폰 뒷면엔 ‘Made in USA’가 아니라 ‘Designed in California’라고 쓰여 있다.
이런 회사를 ‘플랫폼 기업’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연구개발과 디자인 등 제품의 핵심 토대(플랫폼) 설계와 판매에 집중하고 생산은 전 세계 공장에 맡겨 비용은 최소화, 수익은 극대화한다. ‘자본주의 4.0’의 저자 아나톨 칼레츠키에 따르면 미국이 1000달러짜리 중국산 컴퓨터를 수입할 경우 미국의 무역수지는 1000달러 적자로 기록되지만 그 가치의 대부분은 애플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플랫폼 기업의 이윤과 로열티 수입으로 미국에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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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앞으로는 세계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상상력 고취 국가’와 ‘상상력 저하 국가’로 나누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민의 상상력 발휘, 새로운 아이디어와 산업 창출, 특기 계발을 장려하고 기회를 제공하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로 양분된다는 것이다. 한국은 어느 쪽일까.
최근에 만난 한 대기업 경영인은 “갖가지 규제들이 서비스업 사회로의 이행을 가로막고 있다”며 10년 가까이 계속된 영리병원 도입 논란을 예로 들었다. “영리병원이 국민건강보험체계를 흔들 거라고 우려하는데, 부유층이 건강보험은 의무 가입하고 민간보험을 따로 들어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받게 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답답해했다. 이미 웬만한 가정에선 건강보험 외에 암보험 치과보험 등의 민간보험을 들고 있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대신 ‘영리병원’이란 약칭을 쓴 데서 오해가 비롯된 측면이 있다. 의료행위의 대가로 이윤을 취하는 게 영리병원이라면 지금도 국군병원 보훈병원 같은 공공병원 말고는 다 영리병원이다. 고액 환자 진료기록과 그들에게서 받은 현금을 집 안 곳곳과 비밀창고에 숨겨 놓고 탈세하다 적발된 병원들도 비(非)영리병원일 수 없다.
규제는 부패를 낳는다. 권력형 비리로 드러난 서울 양재동 복합유통센터 파이시티는 시설변경 신청에서 건축 허가까지 5년 2개월이 걸렸다. 빚내서 사업하는 시행사는 금융압박 때문에라도 급행료 뇌물을 ‘지르게’ 돼 있다. 시간이 워낙 오래 걸린 탓에 알선수재 시점이 공소시효를 넘기기도 했다. 단계마다 법정처리 지연제한 기간을 두고 이를 지키면 인허가 비리는 확 줄어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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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