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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방형남]보시라이 사태, 北에도 파장 미치나

입력 | 2012-04-28 03:00:00


방형남 논설위원

한국과 중국은 올해 수교 20주년을 기념한다. 양국 관계가 사람으로 치면 청년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상대방을 ‘우방(友邦)’이나 ‘좋은 이웃’으로 부르는 국민은 한국에도 중국에도 거의 없다. 수교 당시 60억 달러에 불과하던 양국 교역량이 2200억 달러로 늘어나는 등 대폭 확대된 양적 교류를 보여주는 통계수치가 무색할 정도다. 한국과 중국 정부는 수교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아름다운 우정, 행복한 동행’을 표어로 45가지의 공식 축하행사를 준비했으나 좀처럼 분위기가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韓中 수교 20년, 머나먼 우정


원인은 한국과 중국이 여전히 상대방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가 일본 아사히신문, 중국 베이징스옌(北京世硏)정보컨설팅회사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2005년 20%에서 지난해 12월 12%로 줄었다. 중국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같은 기간 24%에서 40%로 대폭 늘었다. 올 들어서도 중국의 탈북자 강제송환과 이어도 관할권 주장으로 양국이 갈등을 겪었으니 지금 여론조사를 하면 더 나쁜 결과가 나올 게 틀림없다.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개발 배후에 중국의 지원이 있다는 의혹은 20년 수교국을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최신 사례다. 오늘 주한 중국대사관 건너편에서는 75일째 탈북자 강제북송 항의집회가 열린다.

중국 지도자가 서해 불법조업이나 탈북자 처리 문제에서 한국 국민이 존중하고 인정할 만한 처신을 한다면 한국이 중국을 친구로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중국은 한국의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다고 할지 모르지만 G2 반열에 오른 중국에 대국다운 처신을 바라는 건 욕심이 아니다. 충칭 시 서기였던 보시라이가 일으킨 권력 스캔들은 중국 권력층에게는 피하고 싶은 시련이지만 한중 관계 관점에서 보면 몇 가지 기대를 갖게 한다.

지금까지는 올 연말 후진타오 체제에서 시진핑 체제로 예정대로 권력이 넘어가는 게 당연시됐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했다. 보시라이의 낙마는 중국인들에게 감춰진 진실을 보게 만들었다.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구성된 집단지도체제 입성을 예약했던 권력자 보시라이의 부정부패를 알게 된 중국 인민이 공산당과 지도부를 예전처럼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시라이가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전화를 도청할 정도로 치열했던 권력층 내부의 암투를 보면서 현재의 지도부 선출 방식에 대한 회의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통제에 막혀 권력투쟁을 제대로 취재하지도 보도하지도 못한 중국 언론의 자괴감은 얼마나 클까. 이 모든 불평과 의심이 뭉쳐 변화를 요구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원자바오 총리가 지난달 “정치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면 문화대혁명 같은 역사의 비극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中의 김정은 비호 구도 미묘한 변화


보시라이의 낙마는 그가 태자당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역시 태자당인 시진핑이 국가주석이 되고 보시라이가 든든한 우군으로 집단지도체제에 입성하는 구도라면 중국의 대북(對北)정책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을 비호해온 중국에 아버지의 후광을 바탕으로 입신한 사람들이 지도부의 주력이 된다면 결과는 뻔하다. 태자당 지도부는 북한의 3대 세습정권을 비판해 결과적으로 자기 발등을 찍는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구도가 변하게 됐다. 시진핑이 국가주석이 된다 해도 보시라이의 낙마로 타격을 받은 만큼 김정은 체제에 대한 애정을 노골적으로 내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보시라이 사태를 계기로 중국 지도부가 조금 더 투명한 조직으로 변하면 한중 관계는 새롭게 도약할 수 있다. 한국은 중국을 친구로 신뢰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린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