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치료 강정화 씨 긍정의 삶… 78세 대학생 중간고사… 천상이 잘 있어요
《 지난해 4월 23일 출범한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가 1주년을 맞았습니다. 저희에겐 지난 1년이 그리 만만치 않았지만,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응원이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지난해 동아일보에서 가장 많은 독자 e메일을 받은 부서는 주말섹션 O₂팀이 아닐까 싶습니다.다음은 저희가 지난 1년간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던 기사의 뒷이야기들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궁금해하실 만한 내용이나 후일담들을 모아봤습니다. 앞으로도 더 깊이 있고 재미있는 기사, 차별화된 비주얼로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오디션 도전 인도네시아 11인
(2012년 3월 31일 ‘K팝 본고장서 ★따기, 6개월 장정 생존자는?’)
윤재권 YS미디어(인도네시아 현지의 한국 연예기획사) 프로듀서는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의상도 좀 더 세련되어서 그런지 이젠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연예인인 줄 알고 쳐다본다”고 전했다. 또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노래와 춤을 배워 나가는 속도도 무섭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광고 로드중
■ 국문과 1학년 안목단 할머니
(2012년 3월 3일 ‘안목단 할머니가 영남대 국문과 입학하기까지’)
23일 오후 수화기 너머로 안목단 할머니(78)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래도 한자는 열 개 있으면 대여섯 개는 아니까 괴안타. 근데 영어회화는 아무리 해도 안 되네. 우짜겠노.”
코앞에 닥친 시험 걱정을 늘어놓으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여느 대학생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치르는 시험인 만큼 더욱 욕심이 난다고 하시네요. 전공인 국어국문학 관련 과목은 할 만한데, ‘논하라’라는 형식으로 나오는 교양 과목들은 어려웠다고 하소연을 늘어놓으십니다.
광고 로드중
여전히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8시면 학교로 출발합니다. “강의실에 드가면 내가 두 번째 아이면 세 번째로 온 기라. 나이가 많아 금방 듣고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니까 수업 안 빠지고 열심히 듣는 수밖에 더 있나.”
오후에는 회사로 가 밀린 일들도 또 처리하신다고 하네요. 그나저나 시험은 잘 보셨을까요. “아직 모르제. 한다고 했는데, 점수가 나와 봐야 알지.”
■ 기청공민학교 만학도들
(2012년 1월 28일 ‘한글 보이니 세상이 또렷…꿈꾸는 삶 행복합니다’)
광고 로드중
마지막 공민학교 학생들을 지도했던 진구열 교사(55)는 졸업식 직후 명동의 YWCA 본사로 일터를 옮겼다. 학생들은 아쉬움이 크다. 새로 생긴 한글반은 수업시간도 줄었지만, 파트타임 강사 2명이 번갈아가면서 하다보니 집중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도 박정수(가명·61) 씨가 “하루가 아쉬운데 화요일은 수업도 없다”고 볼멘소리를 내는 걸 보면 배움에 대한 열망만큼은 전혀 식지 않았나 보다.
■ 이장희 작가 (‘스케치 여행’ 연재)
기자가 1주년 후기를 작성하려고 전화를 하자 “이제 그때(연재를 마칠 때)가 된 건가요?”란 말을 가장 먼저 했다. 반응이 좋아 최장수 연재 중인 코너의 필자이면서 왜 괜한 걱정을 하실까. 이 작가는 5월 초 미국으로 떠나 한 달 또는 두 달 동안 현지의 풍경을 ‘O₂’ 독자들에게 전해올 예정이다.
■ 여준상 동국대 교수 (‘한중일 마음지도’ 공동 기획)
20대 한국 여성들의 ‘황량한’ 마음속을 보도한 기사(2011년 4월 30일 ‘외로움에 빠진 20대, 일탈 꿈꾸는 50대’)가 나간 후 여 교수에게는 해당 연령대 학생들의 e메일과 상담 요청이 쇄도했다. 결국 20대 여성 4, 5명이 참가하는 좌담회를 7번이나 해야 했다. 동국대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일본과 중국 유학생들도 한국 친구들과 함께 각각 1번씩 좌담회를 가졌다. 이들은 기사가 한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동시에 자신들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 존엄치료 받은 강정화, 한인철 씨
(2011년 11월 19일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소중한 사람’,
2011년 12월 3일 “엄마, 병 잊고 열심히 살려는 불효자 기억해 주세요.”)
한국에서의 공식적인 첫 ‘존엄치료’ 대상자인 강정화(가명·66) 씨는 다행스럽게도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소중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병세는 더 악화됐지만 얼굴에는 늘 웃음을 담고 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두 번째 존엄치료 사례였던 한인철 씨(당시 33세)는 동아일보 기사가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주치의였던 한국원자력병원 나임일 과장(혈액종양내과)은 “한 씨의 어머니가 장례를 치른 뒤 병원을 다시 찾아왔다”며 “아들이 모자간의 앙금을 모두 털어버린 채 아주 평안하게 임종했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존엄치료와 관련한 두 차례의 보도는 의학계에서도 적잖은 반향을 이끌어냈다. 존엄치료를 담당했던 김유숙 서울여대 교수(교육심리학)는 “대학병원이나 국립암센터의 의사들이 직접 연락해오는 등 의료진들의 관심이 크게 늘어났다”며 “호스피스 쪽에서는 존엄치료의 9가지 질문을 상황에 맞게 일부만 바꿔서 활용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삶의 막다른 길에서 도움의 손길을 뻗는 말기환자들을 보듬어 줄 수 있길 기대한다.
■ 물 위를 걷는 사람 고 신준식 씨
(2011년 10월 22일 ‘물 위를 걷는 사람들, 낚시와 트레킹을 동시에’)
기자가 보기에도 그는 보헤미안 같은 사람이었다. 기자는 기사를 쓰기 전부터 그와 알고 지냈다. 그는 언제나 생각이 자유로웠고 처음 본 이에게도 솔직하고 진지했다. 학창시절엔 창작활동을 위해 집을 나왔고, 유리공장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내비게이션 외판 일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낚시를 배워 그 안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유하기만 했던 그였지만, 한때 그렸던 그림을 모두 태워버릴 만큼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12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나이에 비해 결혼이 늦었던 그는 아직 어린 1남 1녀를 남겨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중학교 1학년인 딸은 가끔 아빠가 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이제 일곱 살인 아들은 감정 표현이 서툴다고 한다. 서울 강동구에 있는 플라이낚시전문점은 부인이 계속 운영 중이다.
■ 유기견 천상이
(2011년 7월 23일 ‘그렇게 무섭던 사람이… 지금은 정겹답니다’)
가끔은 좀 슬프기도 해요. 입 밖으로 흘러나온 혀가 제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친구들처럼 ‘멍멍’ 소리가 안 나오거든요.
하지만 엄마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천상이 네가 복덩어리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준 너 덕분에 유기견 몇십 마리가 살았다. 고맙다”고 말씀하세요. 제 이야기 덕분에 후원하시는 분들이 많이 늘었거든요. 다가오는 여름에는 저처럼 버려지는 유기견이 없기를, 만약 유기견이 생긴다 해도 그들에게 제게 찾아왔던 ‘행운’이 찾아갔으면 좋겠네요.
■ 임사체험
(2011년 6월 11일 ‘죽음의 문턱, 그 강렬한 기억’)
사고나 질병 등으로 의학적 죽음 직전까지 갔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겪은 ‘죽음 너머 세계에 대한 체험’을 뜻하는 임사체험. 이를 다룬 ‘O₂’ 기사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기사가 나간 뒤 본인의 임사체험 스토리를 전하는 독자들의 e메일이 줄을 이었다.
그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사연은 심장마비로 입원했다 20일 만에 깨어났다는 인천에 사는 50대 남성의 이야기. 그의 체험에는 전형적인 임사체험 특징(과거에 대한 기억, 벅찬 흥분과 행복감, 유체이탈 체험 등)이 모두 등장했다. 해외에서도 보기 드문 케이스로 평가할 만했다. 한 대학병원 내과 교수라는 독자는 3년 전부터 임사체험을 ‘의사로서 갖춰야 할 죽음관’이란 제목으로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있다면서, 이 기사를 통해 임사체험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늘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가천대 의과학대 뇌과학연구소의 김영보 교수는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에 있는 임사체험은 과학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관심이 가는 소재”라며 “이 기사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다양한 연구가 진행돼 미국, 일본 등에 못지않게 의미 있는 결과가 축적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