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가 된 6·25 참전용사는 무료 진료
일산병원 산부인과 과장직(연봉 1억7000만 원)을 버리고 2010년 8월부터 에티오피아 에서 의료 봉사를 해온 김철수 명성기독병원장. 아디스아바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최근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명성기독병원 중환자실에서 만난 프롬사는 힘겹게 기자를 향해 웃음을 지었다. 두 차례 대수술을 받은 그는 앞으로 최대 열 차례 더 수술을 받아야 한다. 가난한 프롬사 가족을 위해 병원은 수술비를 받지 않았고 향후 지원도 약속했다. 아프리카 최빈국으로 꼽히는 에티오피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300달러(약 35만 원) 수준. 1000명의 아이가 태어나면 75명은 질병과 가난으로 숨지고, 5세 이하 아동 가운데 저체중아 비율도 34.6%에 달한다. 평균 수명은 56.6세에 그친다.
가난은 가벼운 질병의 예방과 치료마저 힘들게 만든다. 입원실에는 머리 속에 물이 차는 뇌수종에 걸려 머리가 농구공만 해진 아이들이 힘없이 누워 있었다. 엄마가 임신 중에 엽산만 제대로 챙겨 먹어도 뇌수종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지만, 하루 3비르(약 210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심각한 영양실조는 아이들의 얼굴을 빼앗아 가기도 한다. 저항력이 떨어져서 입속 세균이 얼굴을 파먹어 들어가는 질병 ‘노마’에 걸린 아이들은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진다.
지난해 400만 달러(약 45억4000만 원)의 매출을 올린 이 병원은 수익 40만 달러(약 4억5000만 원)를 무료 진료에 고스란히 내놓았다. 병원은 현지인들로부터 ‘코리안 하스피털’로 불린다. 명성교회가 지은 병원이지만 한국 정부의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
병원은 6·25전쟁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에게 무료 진료를 하고 있다. 참전용사의 부인도 병원비의 절반만 내면 된다. 참전용사의 자녀는 우선적으로 병원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6037명의 에티오피아 군인이 참가해 122명이 사망했고 536명이 부상을 당했다. 20대의 청년들은 어느새 80대 할아버지가 됐다.
12일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6·25전쟁 에티오피아 참전용사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멜라세 테세마 협회장은 “전우들 가운데 450여 명이 살아 있다. 우리에게는 의료 서비스가 절실한데 (명성기독병원이) 무료 진료를 해줘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며 웃었다.
11일 오후 에티오피아 현지인들이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명성기독병원 외래진료실 앞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에티오피아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들이 오전에만 문을 열기 때문에 오후에 많은 환자가 몰린다. 아디스아바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의과대 졸업생들은 향후 에티오피아 의료의 발전을 이끌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세브란스병원이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병원을 에티오피아인들의 손에 넘겨줄 예정입니다.”(김철수 원장)
아디스아바바=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