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투병 중 향년 82세 별세
중국 지린 성 지안 현 퉁거우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왼쪽)와 이 비석에 새겨진 신묘년조 기록을 읽기 쉽게 변용한 사진. 고 이진희 교수는 비문이 일제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학설을 제기하며 이로 인해 ‘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新羅’(검게 바탕을 강조한 부분)의 원래 내용을 확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DB
재일 한국인 1세대인 고인은 고대 한일 관계사 연구의 선구자로 1972년 발표한 논문 ‘광개토왕 비문의 수수께끼’를 통해 일본의 광개토대왕 비문 변조설을 제기해 한일 사학계에 충격을 줬다.
19세기 중국 지린 성 지안 현 퉁거우에서 광개토대왕 비가 발견된 뒤 이 비석은 한중일 사학계의 큰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일본은 1880년대부터 비문의 영락 6년(395년) 기사에 나타나는 “백잔(百殘·백제를 뜻함)과 신라는 예부터 속민으로 조공을 해왔다. 그런데 신묘년(391년)에 왜가 와서 바다를 건너 백잔을 깨뜨리고 OOO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라는 부분을 들며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 일본 야마토 정권이 4세기 후반 한반도 남부지역을 정벌해 백제와 신라를 속국으로 삼았다는 가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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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후엔 ‘계간 청구’ 창간(1989년), 한국문화연구진흥재단 설립(1989년) 등을 통해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 한일관계사 등을 연구했다. 저서로 ‘조선 문화와 일본’ ‘광개토왕 비의 연구’ ‘에도시대의 조선통신사’ 등이 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