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형 채널A 문화과학부 차장
웬만해선 택시 승객이 강도로 돌변하지 않는다. 택시에 탈 때 그 승객은 이미 강도였다. ‘돌변’이란 표현은, 예컨대 하이드 씨가 지킬 박사가 되거나, 데이비드 박사가 헐크가 될 때 쓴다. 택시 승객은 택시가 제대로 달리기 시작하자 강도의 본색을 드러냈을 뿐, 원래 강도였다.
문제는 언어의 잘못된 사용이다. 멀리 철학에서도 영혼이나 신 같은 형이상학의 문제들이 잘못된 언어 사용에 따른 말실수나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다. 형이상학 아닌 일상에서도 이런 실수와 장난이 흔하다.
잘못된 언어 사용의 맥락에서 최근 눈에 들어왔던 또 하나의 사례는 지난달 말 총선 후보 등록 시점에 등장한 ‘경기동부연합’이란 용어다. 정확한 속내야 알 수 없지만, 한 진보정당의 대표가 ‘동부연합’이란 용어에 식겁해, 막 따낸 국회의원 후보직을 사퇴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대단한 결사 하나가 새로 만들어진 것처럼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금세 수그러든 것도 그렇거니와, 다른 정황으로도 ‘동부연합’은 그저 형해(形骸)일 따름이었다. 1990년대 진보 세력의 지역 조직이었지만, 적극적인 ‘조직’의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였다. 그런데 NL이니 PD니 하는 또 다른 용어와 뒤섞이면서 역사적 용어가 현실 정치의 용어로 탈바꿈했다. 택시 승객의 강도 돌변이나, 포대갈이 수법에서와 비슷하게 언어의 잘못된 사용이 읽힌다.
단순 실수일 수도, 고의일 수도 있을 게다. 어느 쪽이든, 언어를 통해서만 생각할 수 있는 게 인간인지라, 말의 잘못된 사용이 예상보다 큰 오류를 부르는 상황이 생기곤 한다. 그리고 오늘 치러지는 총선도 그런 상황 중 하나일 것이다. 수많은 ‘말’들 속에서 허언(虛言)을 가려내지 못하면 국민 전체가 두고두고 고생한다.
며칠간 각양각색의 정치 카피들이 거리에 난립했다. 투표는 사람을 고르는 일인 동시에, 하나의 카피를 선택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카피들은 더는 “못살겠다 갈아보자” “갈아봤자 별 수 없다” 식으로 단순하지가 않다. 사찰에 감찰이 뒤섞이고, 비슷한 복지 공약들이 여야를 넘나들면서 유권자를 헷갈리게 한다.
이지형 채널A 문화과학부 차장 apori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