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회 보건의 날… 복지부, 호주인 의사 故매혜란 여사에 ‘국민이 뽑은 첫 무궁화장’ 추서
매혜란 여사는 미혼이었지만 한국 산모들의 친정엄마나 마찬가지였다. 매혜란 여사는 1950년대부터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산모들의 건강을 돌봤다(위). 일신기독병원에서 1만 번째 아기가 태어난 것을 기념하며 찍은 사진.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매혜란 여사의 원래 이름은 헬렌 펄 매킨지. 호주 출신인 목사 아버지가 1910년대 부산에서 선교활동을 한 게 한국과 인연의 시작이다. 그는 부산에서 태어나 평양외국인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고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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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의 미혼 여의사는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부산 경남의 골목길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혼자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조산사를 교육하는 데 힘썼다. 지금까지 일신기독병원을 거친 조산사는 2600명에 달한다.
1960년경 병원에서 1kg도 되지 않는 미숙아가 태어났다. 부모는 “자식이 이미 8명이나 있으니 이 아이는 포기하겠다. 알아서 하라”며 병원에 아기를 두고 나가버렸다. 부모를 원망할 여유도 없었다. 그는 “일단 생명부터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아기를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호주에서 인큐베이터도 들여왔다. 하늘도 정성에 감복했을까. 6개월이 지나자 아이의 앙상했던 뼈에도 조금씩 살이 붙었다.
아이 부모를 수소문했다. 혹시 병원이 치료비를 내놓으라고 할까 봐 주저하며 부모가 찾아왔다. 그는 “아이를 잘 키워 달라”며 당부의 말만 건넸고, 아이 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부모는 매혜란 여사의 뜻을 기리겠다며 아이 이름을 병원명과 같은 ‘일신’으로 지었다.
어느 날 한 산모가 병원 밥을 먹다 펑펑 울었다. 그가 이유를 물으니 산모는 “나는 미역국을 먹고 있는데 집에 있는 애들은 굶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몸부터 추스르라”고 다독거렸다. 다음 날 산모가 퇴원할 때, 그는 미역과 음식거리를 한 아름 안겨줬다. 가정형편을 뻔히 알기에 혹시라도 몸조리를 못할까 봐 걱정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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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혜란 여사는 1976년 한국인에게 병원을 위임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여생을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보내다 2009년 9월 18일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한편 6일 보건복지부는 제40회 보건의 날 기념식을 개최하고 매혜란 여사 외에 정희원 서울대병원장에게 황조근정훈장을, 부산 혜명의원 황수범 원장에게 국무총리 표창을 수여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