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설픈 자작극 10여일만에 들통… 주범 2명 긴급체포
○ 몰카박스 제작 대가로 2억 건네
26일 오후 1시 40분경 강원랜드 카지노 바카라 게임대에 있던 고객 김모 씨(42)와 이모 씨(42)가 갑자기 카드박스를 들고 고객지원센터로 달려갔다. 이들과 함께 있던 8명이 카지노 보안요원들을 제지하는 역할을 맡았다. 김 씨와 이 씨는 고객지원센터에서 카드박스에 불빛이 보인다며 사기도박임을 주장했다. 강원랜드에 따르면 이들은 “그동안 카지노에서 돈을 많이 잃었다. 잃은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증거자료로 남기기 위해 카드박스를 탈취해 고객지원센터로 가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몰카는 자작극이었다. 이들은 카지노 단골 고객인 장모 씨(42)와 짜고 몰카 존재 사실을 강원랜드에 알린 뒤 도박으로 잃은 돈을 보상받아 나눠 갖기로 한 것. 장 씨는 몰카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을 다른 도박꾼들로부터 받아 이들에게 전달했다. 경찰 조사에서 김 씨와 이 씨는 각각 30억 원과 20억 원을 잃었다고 진술했지만 경찰은 이들의 카지노 출입 횟수가 30차례 미만이어서 액수를 과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김 씨와 이 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긴급체포해 6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달아난 장 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소재 파악에 나섰고 이들로부터 돈을 받기로 하고 보안요원 제지 역할을 한 8명 가운데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들이 당초 몰카를 이용해 사기도박을 하려다가 기술적인 문제로 실패한 뒤 자작극을 공모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 자작극 바람에 사기도박도 덜미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직원 황 씨가 자작극 일당과 별개의 사기도박 일당으로부터 사주를 받고 카드박스를 운반한 사실을 확인했다. 황 씨의 통화기록 조회 결과 자주 등장하는 번호를 추궁해 진술을 받아낸 것. 지난달 26일 몰카 사건 이후 강원랜드가 추가로 발견한 몰카 설치 카드박스 한 개가 이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에 따르면 ‘마카오 형님’으로 불리는 배모 씨(46)는 2009년 2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22차례에 걸쳐 직원 황 씨와 김모 씨(34)를 통해 몰카가 설치된 카드박스를 바카라 게임대에 옮겨놓았다. 황 씨는 이 대가로 9900만 원을 받아 3900만 원을 김 씨에게 줬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황 씨가 수익금의 10%를 받기로 했다는 점에서 사기도박 일당의 수익 규모가 10억 원 이상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몰카를 통해 카드 패를 확인한 뒤 무선송수신기로 어느 쪽에 베팅할지를 대리 게임자인 속칭 ‘병정’들에게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돈을 잃고 카지노 주변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에게 수십만 원씩 일당을 제공하고 병정으로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배 씨 일당은 카지노 측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하루에 3, 4시간에 걸쳐 2, 3개 카드박스 분량(120∼180회)만 게임을 했다. 경찰은 병정들을 조사해 도박단이 하루 최고 1억5000만 원을 땄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다만 몰카로 몇 장의 카드 패를 볼 수 있는지, 다른 수법이 사용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한편 강원랜드 카지노는 개장 12년 만에 처음으로 일제 점검을 위해 10일 임시 휴장한다.
정선=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